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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구멍 속에 갇힌 예술혼들
“쥐구멍 안에서 뭔가 숙성되고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한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갈까 말까 하는 망설임, 바깥세상으로부터 음식을 가져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서간체 소설 등 실험적인 작품으로 소설의 지평을 넓혀오고 있는 소설가 김다은(추계예대 교수)의 새 단편소설집 ‘쥐식인 블루스’(작가)는 예술과 꿈, 자유와 열정을 가진 모든 이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알을 품고 깨뜨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줄 한줄 완성해 나가는 작가들에게 시간과 기다림의 과정은 필수지만 바깥으로부터 양분이 제공돼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돈과 명예, 먹을 것이 넘쳐나는 바깥세상으로 한 발 내디디면 다시 쥐구멍으로 찾아들기는 쉽지 않다. 쥐식인에게 나갈까 말까 망설임은 마치 숙명 같다. 작가의 날카로운 자기인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쥐식인 블루스가 슬픈 건, 쥐구멍 밖의 음식을 가져와야 하는 수고로움이나 위험천만이 아니란 것. “쥐구멍의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 무엇(!)이 제대로 숙성되고 있는지 부패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암담하다고 말한다.

‘쥐식인 1’이 문학ㆍ예술의 가치와 돈과 명예의 문제라면 ‘쥐식인 2’는 세상의 눈과 안에 도사린 욕망의 갈등 사이에서 드러낼까 말까의 망설임을 보여준다. 쥐식인은 소위 석ㆍ박사 등 가방끈이 긴 이들만 의미하지 않는다.

1년 전부터 스포츠댄스를 배워오고 있는 김 교수는 ‘슬로슬로 킥킥’, 발을 뗄까 말까 망설임의 스텝에서 알레고리를 건져왔다. 예리한 칼로 생선살을 발라내는 장인처럼 쥐식인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는 작가의 섬세한 놀림이 놀랍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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