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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처럼 읽히는 사진’의 작가 쟈코멜리,그의 사진이 왔다
“쟈코멜리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슬프고 음울하고 무섭고 무거운 내용들은 그러나 그이의 감각과 감성이 이뤄낸 뛰어난 조형성, 추상성의 뒷받침으로 매우 탄탄하다. 그래서 그 슬픔과 공포도 다 아름답다.”(사진가 강운구, 마리오 쟈코멜리 전시도록 서문 중에서)

흑과 백이 강렬한 콘스트라스트를 이루는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마리오 쟈코멜리(Mario Giacomelli,1925~2000)의 사진이 한국에 왔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사진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은 이탈리아 사진가 마리오 쟈코멜리의 국내 첫 회고전을 오는 24일 개막한다.

‘THE BLACK IS WAITING FOR THE WHITE’(어둠은 빛을 기다린다)라는 타이틀로 내년 2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오랜 준비 끝에 마련한 특별전이다.
마리오 쟈코멜리는 사진가들로부터는 뜨거운 사랑을 받는 작가이지만 한국 대중들에겐 그다지 알려지지않은 작가.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미술관은 그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대표작을 엄선해 220여점을 선보인다. 아울러 각종 출판물과 쟈코멜리가 생전에 아꼈던 소장품도 함께 전시해 그의 사진활동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출품작들은 쟈코멜리의 아들이자, 쟈코멜리의 고향(세니갈리아)에서 부친의 아카이브를 운영 중인 시모네 쟈코멜리(Simone Giacomelli,1968~ )와 밀라노 소재 사진전문 재단인 포르마(Fondazione FORMA per la Fotografia)에서 대여받은 것이다.

쟈코멜리는 ‘블랙의 작가’로 불린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인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처럼 눈밭에서 즐겁게 어울리는 수도사들의 모습을 오로지 검정색만으로 표현한 작품 등 블랙으로 표현한 사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검은 색 전통의상을 고집하는 이탈리아 스카노(Scanno) 지역 사람들을 흑백으로 찍은 ‘스카노’ 연작은 그 장중하면서도 견고한 조형성이 가히 압도적이다. 


그가 이토록 어둡고 장중한 사진들을 집중적으로 찍은 것은 일평생 죽음의 문제를 그 누구보다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1925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세니갈리아(Senigallia)에서 태어난 쟈코멜리는 아홉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죽음과 이별의 상처를 안고 살았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호스피스병원에서 세탁부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세탁 일을 도왔던 쟈코멜리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무시로 접하면서 인간의 소멸과 유한성에 대해 늘 생각하곤 했다. 

일찍 철이 들었던 쟈코멜리는 초등학교 졸업 후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취직했고, 인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또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를 즐겼다. 그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을 짓눌렀던 가난을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의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으로 인쇄소를 차린 쟈코멜리는 28살의 생일에 카메라를 사서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그리곤 독학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생을 마치기까지 인쇄소를 운영하는 한편으로 사진가로서의 활동도 멈추지 않았던 것.
그의 사진은 세계 사진사의 그 어떤 장르와 사조에도 편입되지 않는, 유니크한 것이 특징이다. 즉 사진을 전공하지도, 제도화된 틀에도 속하지 않은채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발견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작업 앞에서 한없이 자유로왔던 그는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을 했지만 온갖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이미지를 조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흑백을 반전시킨다든지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필름에 선을 긋기도 했으며, 가면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처럼 쟈코멜리는 기존의 사진사에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진작업은 한동안 저평가되기도 했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알렉산드라 마우르 포르마 관장은 “쟈코멜리의 사진은 지극히 독립적인 스타일이다. 사진사에서 독보적이고,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각적 충격을 시각화시키고 싶어 갖가지 실험을 거듭했고, 독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평했다.

쟈코멜리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요양병원에서 생의 불가해성과 부조리, 그리고 절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죽음과 슬픔이 가득찼던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장 좋아했다. 이들 작업에 쟈코멜리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시인 체자레 파베제(Cesare Pavese,1908∼1950)의 시 ‘죽음이 찾아와 너의 눈을 앗아가리라’라는 싯귀를 따와 제목을 달았다.
시를 사랑했던 쟈코멜리는 시에서 영감을 받거나, 시처럼 읽히는 사진을 찍길 즐겼다. 말년에는 ‘그것은 그것이었을 뿐이었다’는 말로 이같은 표현조차도 덧없는 것이라고 되뇌긴 했지만, 그는 일평생 시를 암송했고 그의 몸에서 그 시들이 우러나와, 사진 속에 켜켜이 이입된 작품을 남겼다.


춤추는 사제들을 찍은 대표작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수도원을 찾아 2층에 숨어 찍은 것이다. 눈 구경을 나온 수도사들을 향해 몰래 눈뭉치를 던진 끝에 얻게 된 뜻밖의 밝고 순정한 사진이다. 어린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검은 옷의 사제들은 마치 하늘을 나는 융탄자 위에 올라탄 것처럼 공중을 부유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번뇌와 갈등을 내려놓은채 밝게 웃는 사제들을 담은 이 사진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밝고 따듯한 작업이다.

그는 또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성지 루르드(남 프랑스)에 기적을 바라고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담은 ‘루르드(Lourdes) 시리즈’ 등 생의 순리와 자연의 장엄함을 남다른 통찰력을 통해 다룬 빼어난 연작들을 여럿 남겼다.
관람료 성인 6000원, 학생 5000원.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02)418-1315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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