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7개 시·군·구 수렵장 23일 일제 개장…전국의 엽사들 ‘금요일’만 기다린다
국내 수렵인구 1만5000여명 추산꿩 사냥은 3초이내에 승부 결정
면허는 기본…수렵보험은 필수
활동성 많고 주인에겐 충성심…
잉글리시포인터 최고 인기 사냥개
보통 100만원대서 1000만원대 호가
강원도 홍천의 한 야산. 사냥개로 유명한 잉글리시세터(English Setter)들이 낮은 자세로 냄새를 맡으며 바삐 움직인다. 그 뒤를 엽총을 맨 한 남자가 사뿐히 걸음을 옮기며 따라간다. 20여분쯤이나 지났을까? 우거진 수풀 앞에서 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꼬리를 빳빳이 90도로 세우고 자리에 멈춘 채 뒤따르던 남자를 돌아본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개가 지목한 곳 근처로 걸음을 옮긴다. 2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자 이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고(GO)!”
순간 사냥개들은 수풀 속으로 “왈~왈~” 짖으며 뛰쳐들어간다. 그리고 순간 “푸드덕” 소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곧바로 “탕~” 하는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이 남자의 총에 명중된 꿩은 깃털을 날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수렵(狩獵)’, 사냥의 계절이 돌아왔다.
‘3초.’ 사냥개가 수풀 사이로 뛰어들어가고, “푸드덕~” 소리와 함께 꿩이 날아간다. 사냥꾼은 순간 겨눴던 엽총을 발사한다. 딱 3초간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꿩을 잡을 수 없다. 이 3초의 순간에 꿩을 잡지 못했다면 엽사는 “졌소” 하며 엽총을 내려놓는다. 그게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사진제공=전국수렵단체협의회] |
오는 23일부터 전국 37개 시ㆍ군ㆍ구 수렵장에서 수렵이 시작된다. 사격 대표 출신인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수렵인구를 1만5000여명으로 추산했다. 또 이들 수렵 마니아 중 90%는 꿩 수렵이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꿩 수렵은 3초 이내에 승부가 결정된다. 수렵견들이 수색을 통해 꿩이 있는 곳을 주인에게 알리는 포인트(point)를 하면, 대기하던 엽사가 엽총을 쏴 잡는 것이다. 이때 꿩을 3초 내에 명중시키지 못하면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엽사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김 부회장은 “꿩 수렵은 그야말로 꿩과 엽사의 한판 승부”라며 “만약 단 한 번에 명중시키지 못하면 도망가는 꿩에게 ‘그래, 네가 이번 승부에서는 나를 이겼다’며 거수경례를 한 뒤 보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수렵면허 취득은 기본, 수렵보험도 들어야=수렵을 하기 위한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수렵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후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수렵 강습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사냥에 사용되는 총기에 대한 ‘총포 소지 허가증’은 기본이다.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안전 문제에 대한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현재 삼성화재 등 보험사들은 총기로 인한 사고를 보상해주는 수렵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이후 전국 수렵장에서 이용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수렵행위가 가능하다. 지정된 수렵구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생태계 보전지역과 야생 동ㆍ식물 보호구역, 문화재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 관광지 등에서는 수렵을 할 수 없다.
포획한 조수는 반드시 5일 이내에 해당 읍ㆍ면ㆍ동사무소에 신고한 뒤 수렵 동물 확인 표시를 받아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잡는 만큼만 수렵 비용이 부담되는 수혜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 포획 야생동물 확인표지제도(태그제)가 실시돼 수렵에 참여하는 경우 환경부 위탁기관인 환경보존협회 홈페이지(www.wildlifetagging.kr)를 통해 수렵장 입장권 및 수렵 동물별 태그를 구매해야 한다.
▶100만원에서부터 1000만원이 넘기도 하는 수렵견 가격=수렵에 이용되는 수렵견의 종류는 다양하다. 주로 민첩하고 활동력이 좋은 견종이 선호된다. 그중 잉글리시포인터(English pointer)가 가장 인기 있다. 사냥개의 대명사로 불리며 사냥감을 찾아내면 꼬리와 한쪽 앞발을 들고 코를 앞으로 내밀어 그 위치를 알려주는 행위(포인트)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형제 견에 해당하는 잉글리시세터도 수렵인 사이에서 애용되는 종이다.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을 향해 몸을 세트시켜 알린다는 것에서 유래된 세터는 활동성이 많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큰 특성이 있다.
박복규 전국수렵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수렵인에게 사냥개는 그야말로 동반자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사냥감을 찾고 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박 국장은 “수렵견은 일반 개들과 달리 사냥에 필요한 기본적 기술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전문훈련소 등에서 교육을 마친 후 유통된다”며 “보통 100만원대에서 훈련이 잘된 경우는 100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남획을 위한 밀렵은 수렵인들의 적=밀렵과 수렵은 어떻게 구분할까?=김 부회장은 “모든 필요 서류와 안전 교육을 갖추고 허가를 받아 활동하는 수렵과 아무런 절차 준수 없이 진행되는 밀렵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한다.
허가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수량만큼만 포획하는 수렵에 비해 밀렵꾼들은 지역에 상관없이 야생 동물을 잡는 데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멧돼지의 경우 마리당 100만원에 거래된다”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백마리씩 잡는 밀렵꾼들은 수억원대의 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밀렵이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수렵을 자연에서 즐기는 레저ㆍ스포츠로 생각하는 수렵인들과 달리, 밀렵꾼들은 포획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올무 등 갖가지 불법 도구 등을 사용해 수렵장을 망치는 행위를 일삼는다고 김 부회장은 말했다.
그는 또 “밀렵행위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수렵문화가 좀 더 확산돼 수렵인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