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KBS 개국 전부터 KBS와 함께 해왔는데, 이런 항의 기자회견은 처음이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자조합 소속 최고령 배우 최명수(88)씨의 말이다. 20일 오후 이순재(77) 송재호(73) 이영후(72) 등 베테랑 배우들이 KBS를 성토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수 비 주연의 드라마 ‘도망자 플랜B’에 출연 뒤 출연료를 받지 못한 송재호씨는 “이 사태를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건 비극이다”며 “지금까지 방송국에다가 이러쿵 저러쿵 사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들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순재씨는 “배우들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출연료를 받지 못해도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생각 때문에 버텨왔다”며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돈을 못 받고 있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누적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칠순이 넘은 원로 배우들은 KBS의 책임있는 후속 조치를 요구했다. 한연노 소속 연기자 70%가 연 소득 1000만원 미만인 현실에서 연기자 생계가 위협받는 처지를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온정적인 호소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사태가 지난 12일 KBS에 대한 촬영거부 투쟁으로 표면화된 뒤 KBS가 보인 태도는 수수방관에 가깝다. KBS는 1차 해명자료를 통해 “외주제작사에 이미 지급한 돈을 이중지급할 수 없다”는 법논리를 따졌고, 20일엔 “출연료 직접 지급은 정부의 외주제작정책 근간을 흔드는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한연노 측이 “애초부터 부실 외주제작사로 우려된다고 KBS 측에 항의했지만, KBS 담당자가 문제 없으니 출연해달라고 했다”는 폭로에 대한, KBS의 해명은 어디에도 없다. 문제가 된 외주제작사 선정 과정이나 KBS의 내부 선정 기준, 출연료를 포함한 제작비 지급 내역, 후속 장치 마련 등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설명이 없다. 1개 방송사에서만 문제를 일으킨 드라마가 5개나 되는데도, 당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민간기업이라면 내부 윤리 규정이나 컴플라이언스에 따라 응당 후속 조치가 즉각적으로 이뤄졌을 일이다. 이 때문에 법제도 논리에 기댄 KBS의 해명은 일견 맞는 소리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조차 책임 회피를 위한 말꼬리 잡기식 논쟁처럼 들린다.
그동안 정부의 외주제작개선을 위한 협의체 활동에 지상파방송사들이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던 터라 더욱 그렇다. 외주제작사와의 저작권 배분 , 제작비 산정방법 및 지급 시기 등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방송프로그램 공급 계약에선 방송사가 여전히 늘 ‘갑’이다. 사익 추구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영상 한류 시대의 질적 성장을 위해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좀 더 적극적인 사태 해결 노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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