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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문화계는 지금 ‘애니멀앓이’중
온라인선 말춤 추고…TV선 브라우니에 열광하고…스크린선 늑대소년에 빠지고…
음모·계락 난무한 인간사에 식상
동물 통해 정서교감·순수함 자극
대중·순수문화예술계 장르 초월
보조수단을 치유 중심 소재로 다뤄
뒤틀린 인간성에 대한 반성 시각도


대중문화계가 동물과 사랑에 빠졌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애완인구 1000만명 시대, 동물이 나오는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가요 등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전례 없이 모두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송에선 조선시대 말을 돌보는 천한 마의(馬醫)에서 어의(御醫) 신분까지 오른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MBC 월화사극 ‘마의’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 속에는 지난 10회까지 말ㆍ개ㆍ소ㆍ양 등의 가축뿐 아니라 고양이ㆍ원숭이ㆍ타조ㆍ토끼까지 대거 출연해 열연(?)을 펼쳐보였다.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인 KBS 2TV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에서 정 여사의 애완견으로 나오는 시베리안허스키 개 인형 ‘브라우니’는 여느 개그맨보다 인기가 더 좋다. 진짜 개도 아닌 인형에 불과한데도 출연 동료 개그맨을 따돌리고 단독으로 의류 CF 계약을 따내, 다음달부터 TV 광고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스크린에선 한 암컷만을 바라보며 목숨까지 바치는 유일한 포유류, 수컷 늑대의 성질이 새삼 관객을 울리고 있다. 송중기ㆍ박보영 주연의 영화 ‘늑대소년’은 지난달 31일 개봉 이후 닷새 만에 관객 130만을 동원하며 개봉 1주차에 흥행 1위를 차지했다. 늑대와 인간의 유전자 변형체인 늑대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소녀는 늑대소년을 길들이기 위해 ‘애완견 생활백서’를 들춘다.

가요계에선 말 타는 춤사위가 세계를 휩쓴 지 수개월째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서구문화권을 비롯해 지구촌에서도 성공한 데에는 말춤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요즘 흥행 1위를 달리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속에는 동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돌보고, 길들이고, 교감하면서 얻는 따뜻함은 동물이 주는 정서적 효과다. 대중문화 속 동물은 때론 인간과 다른 ‘타자’로서, 인간의 교만함을 반성케 한다. 개그콘서트 ‘정여사’ 코너속의 브라우니(왼쪽), 영화 ‘늑대소년’의 한 장면

그런가 하면 화랑가에도 동물이 전시장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김영미 작가는 7~13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동물로 담은 실존의 우리들’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연다. 그동안 인체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진력해온 작가가 사실적 대상을 동물로 치환해, 인간성을 비틀고 반성한다.

이처럼 동물이 대중ㆍ순수 문화예술의 중심 소재로 떠올라 한꺼번에 대중적인 흥행을 거둔 일은 무척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과거 ‘각설탕’(말), ‘마음이’(개) 등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다룬 영화들이 간간이 출현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적은 있지만, 영화ㆍ드라마ㆍ가요ㆍ예능 1위 작품 속에서 모두 동물과 함께하기는 처음이다.

제작진 측에서도 이런 흥행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50부작인 ‘마의’에서 말ㆍ개ㆍ고양이는 극 초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 분)의 의술과 착한 심성을 보여주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었다. ‘마의’ 제작진 관계자는 “기획 단계에서 동물로 어필해야 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며 “동물이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는 등) 연기를 하니까, 시청자들 눈에 신기하고 귀여운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우니’ 인기 역시 우연히 터졌다. 소품 정도로 쓰일 예정이었다가 무심하고 시크한 성격을 부여받아 시청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됐다.

‘늑대소년’은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복고 감성과 동물의 순수함이 만화 같은 영상 연출에 잘 녹아든 점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예상 밖 흥행에는 동물을 돌보고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와 동물만이 지닌 순수함에 이끌리는 동경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음모ㆍ계략ㆍ술수 등 극 속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인간의 속성이 동물에겐 없다. 동물은 아이처럼 순수함 그 자체다. 동물 등장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짠한 것은 생존경쟁 속에서 퇴화했거나 잃어버린 순수함이 자극되고, 그런 부분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인간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어 변화를 주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고,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물질만능주의,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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