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대강당. 영화 ‘범죄소년’의 주연배우 서영주군(14)은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땀을 뺐다. 또래이거나 나이가 몇 살 많은 소년소녀들은 짓궃은 질문을 쏟아냈다. 서군은 “나이가 안 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베드신을) 안했습니다.” “많이 받지 않았어요, 100만원” “잘생기지 않았어요”라며 대답했다. 강이관 감독에게는 “문신있으면 배우되기 어렵나요?” “마지막 결말이 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냐”는 날카로운 질문도 떨어졌다. 이날 영화를 본 관객은 서군이 연기한 ‘보호소년’들로 죄를 범한 19세 미만의 소년들이다. 이들은 죄의 경량, 범행경력, 재범 가능성, 보호자 유무 등에 따라 소년원에 수용되거나 보호관찰소의 관리 감독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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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화로는 최초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과 서울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에서 ‘범죄소년’의 개봉전 시사회가 열렸다. 서울보호관찰소 시사회엔 150여명의 보호소년들이 참석했으며, 김종남 사무관은 “대부분 폭력, 절도, 무면허운전, 뺑소니사고 등의 범행 경력이 있는 소년들”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가정 등 일상을 유지하며 보호관찰을 받는 보호소년들의 경우, 야간외출제한 등의 통제를 받으며 보호관찰소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해야한다.
영화 ‘범죄소년’은 부모 없이 외할아버지를 간병하며 살던 가난한 10대 소년 지구(서영주 분)이 폭행, 특수절도 등의 범행을 반복하며 보호관찰과 소년원 입ㆍ퇴원을 거듭하다가 자신을 버린 젊은 어머니(이정현 분)를 만나며 겪는 일을 그렸다. 빈곤 속에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소년과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돼 아이를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어머니의 대를 잇는 불행을 보여주면서 사회적 편견과 안전망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다. 영화 상영 중 10대 소년소녀가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를 하거나 보호관찰 대상이 된 소년이 ‘야간외출제한’을 위한 불시의 전화를 받는 장면, 주인공이 욕설을 하는 대목 등에선 키득거리는 웃음이나 ‘우와!’하는 장난스러운 감탄사도 객석에서 나왔다. 하지만 1시간 40분여의 러닝타임 대부분 소년소녀들은 졸거나 자리를 뜨지 않고 진지하게 관람했다. 강이관 감독이 “재미있게 본 사람”과 “재미없게 본 친구“를 묻자 대부분은 아무 표시도 안 했지만, 일부는 “재미있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밝힌 보호관찰소의 담당 계장은 “연극이든 영화든 아이들이 이렇게 집중해서 본 적이 없었다”며 “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시사회 후 강이관 감독과 배우 서영주가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는 짓궂은 질문으로 시작됐지만, 진지한 감상평도 이어졌다. 한 소년은 “재미있기도 슬프기도 했다”며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 무엇이라도 배워야 겠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는 사절이다, 결혼해서 준비되고 미래를 튼튼히 설계해서 애를 낳아야겠다, 과속은 안된다”고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소년은 “주인공이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할아버지를 간병해드릴 사람이 없다고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비슷한 처지가 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다른 소년은 “(범행과 처벌 이후) 아버지도 친구 모임에 나가시지 못하고, 나도 3년 동안 부모님과 동반해 모임이나 집안 행사에 간 일이 없다”고 고백했다. “소년원에선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며 영화에 공감을 표한 아이도 있었다. 한 소년은 “극중 주인공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범행(특수절도)하는 장면을 보고 반성하라고 내 주위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이관 감독은 “여기 있는 친구들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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