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재즈바에서 부른 가곡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심금 울려

‘과수원길’ ‘비목’ ‘저 구름…’ 등
익숙한 가곡에서 새로움 창조

故박영석 추모곡 ‘한계령’도 수록
고인 된 사촌오빠 넋 기리기도



가곡(歌曲)의 사전적 의미는 ‘시(詩)에 곡을 붙여 만든 서정적인 노래’다. ‘가고파’는 이은상 시인의 시에, ‘남촌’은 김동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가곡이다. 가곡의 본고장은 독일이며, 가곡에 곡을 붙인 작곡가들 역시 서양음악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중심엔 한국 문학의 아름다운 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완성된 시를 해치지 않고 곡을 붙이는 작업은 완성된 곡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보다 까다롭다. 가곡의 선율과 리듬은 시의 운율과 서정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가곡은 전통음악 이상으로 우리 고유의 정서로 다복하며 평균 이상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대중가요의 홍수 속에서 곱씹어 감상할 여유를 필요로 하는 가곡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곡이 음악 교과서 몇 페이지만으로 버텨내기엔 역부족인 세상이다. 변화는 곧 생존의 조건이다. 가곡을 재해석해 담은 재즈 보컬리스트 김형미의 2번째 앨범 ‘가고파’는 이에 대한 일종의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찾아와 필연이 된 재즈의 길=김형미는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에 뛰어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음악이 재즈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신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고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앨범을 준비하게 됐는데, 제대로 한번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특정 장르를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떠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재즈 보컬 캠프를 매년 개최하는 재니스 볼라를 만나 재즈에 빠져들게 됐죠.”
 

가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가고파’를 발표한 재즈 보컬리스트 김형미.                             ［사진제공=PAG Jazz]

▶가곡, 재즈로 옷 갈아입고 친근해지다=김형미는 2011년 솔로 데뷔 앨범 ‘더 니어니스 오브 유(The Nearness of You)’에선 스탠더드 재즈를 선보였다. 그런데 그는 왜 이번 앨범에 전공인 재즈와는 일견 멀어 보이는 가곡을 전면에 내세운 것일까?

“우연히 재즈 피아니스트인 친한 동생의 녹음실에서 ‘가을밤’이란 가곡을 부른 일이 있습니다. 꽤 괜찮은 것 같아 예술의전당 재즈바에서도 그 곡을 부른 일이 있는데 앞에 앉아계시던 관객 한 분이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그때 가곡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앨범 속 13곡은 자개장을 닮은 앨범 재킷처럼 따뜻하고 정감 있다. ‘재즈’ 하면 떠오르는 다소 부담스러운 목소리 대신, 힘을 뺀 담백한 목소리가 청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스윙(재즈 연주 특유의 독특한 리듬감)은 느껴지지만 편곡은 팝적인 터치를 놓치지 않는다. 팝에 가까운 재즈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인데 금세 친근해진다. ‘과수원길’ ‘비목’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 모두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었지만 잊었던 곡들이다. 단시간에 스며들어 추억을 재정리시키는 ‘익숙한’ 새로움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엽서형태로 제작된 앨범 속지도 수록곡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속지는 13장의 낱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자들에게 녹음한 노래들을 들려주니 새로운 노래로 알더군요. 이 앨범이 젊은 세대에게도 자연스럽게 가곡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수 있는 수단이 됐으면 좋겠어요. ”

▶그리운 사촌오빠 고(故) 박영석 대장=이번 앨범엔 특별한 곡 하나가 실려 있다. 하덕규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은 쓸쓸한 가사와 감성 어린 멜로디로 사반세기 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명곡이다. 김형미는 지난해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중 실종된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김형미는 사촌오빠인 박 대장의 1주기를 맞아 자신의 앨범에 추모곡으로 ‘한계령’을 수록했다.

“오빠는 항상 제게 정 많고 따뜻한 분이셨어요. 지난해 추석 때 뵌 게 오빠와의 마지막 추억이 됐습니다. 오빠의 부재가 여전히 믿어지지 않아요. 보이지 않아도 늘 어딘가에 계셨던 오빠이기에 지금도 어느 이름 모를 산을 오르고 계실 것만 같아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