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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노숙소녀 살해사건’ 재심서 무죄… 5년 억울한 옥살이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이른바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5년 간 옥살이를 하다 만기출소한 정모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정 씨를 억압해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든 수사기관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는 25일 노숙소녀 A 양을 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정 씨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노숙소녀를 살해하기 이틀 전 다른 노숙자들과 함께 B 씨를 공동폭행한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단계에서 했던 피고의 자백이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번복되었던 점이 인정되고,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도 일관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 정 씨 혐의의 유일한 근거가 되었던 진술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구성한 범행 과정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A 양을 폭행하기 위해 수원역에서 수원고까지 1시간을 이동했다는 것이나, 수원고의 담을 넘어 범행 장소에 들어갔다는 것도 당시 현장 상황이나 피고인의 신체 상황에 비추어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수원고 인근 CCTV에 피고인이 피해자를 데려간 장면도 찍혀 있지 않고, 피해자의 사망시각 역시 범행 진술 시각보다 훨씬 이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상당히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제와 재심을 받게 된 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재판이 끝난 뒤 정 씨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풀어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다”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출소 뒤 노숙생활을 청산한 정 씨는 수원의 노숙자다시서기 센터의 지원을 받아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정 씨의 무고함을 밝혀낸 박영준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범인을 잡아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의심을 가질 만한 증거들을 외면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문민 정부 이후에도 이런 억울한 사건이 없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은 지난 2007년 5월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노숙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다. 당시 연예인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등 범인을 찾으라는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수원역 주변의 노숙자들을 탐문해 정 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겁을 주고 유도신문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정 씨에게 자백을 이끌어냈고, 정 씨 역시 자신이 폭행했던 B 씨와 A 양을 착각해 살해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정 씨와 다른 피고인의 진술 외의 다른 물증은 없었다.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정 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자백을 뒤집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원역 등지의 CCTV를 확인해달라는 탄원 역시 배척했다. 결국 정 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검찰은 오히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정 씨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그렇게 노숙소녀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쓴 정 씨의 운명은 지난 6월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나면서 전환의 기회를 맞았다. 대법원은 “수원역 무인카메라 녹화 영상에 정 씨의 범행과 관련된 모습이 전혀 없고 피해자의 사망시각도 종전 자백 진술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위증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고, 재심을 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재심 공판에서도 검찰은 종전 입장을 굽히지 않고 원심과 같이 징역 20년형을 구형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염모 형사는 수원노숙소녀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수원역에서 일어난 영아유기살해 사건에서도 여성장애인을 무리하게 수사해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국가인권위의 징계 권고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현재도 경기도 화성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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