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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랜스 암스트롱, ‘인간승리’에서 ‘영구제명’으로…사이클 황제의 몰락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암으로 인한 고통은 이길 수 있었어도 약물의 유혹은 떨치지 못했다. 고환암을 이기고 7년 연속 세계 최고 권위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이 금지 약물 복용으로 결국 퇴출됐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은 23일(한국시간) 암스트롱의 타이틀을 박탈하면서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난 10일 미국 반도핑기구(USADA)가 암스트롱의 도핑 혐의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뒤 나온 최종 결정이다. USADA는 암스트롱이 지구력을 높이려 적혈구 생성 호르몬을 투약하거나 자기 피를 수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996년 암세포가 뇌와 폐까지 번져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기적처럼 부활한 암스트롱에게 이번 영구제명 결정은 ‘사망선고’나 다름 없다. 쌓아올린 업적과 누린 영광이 크고 화려한 만큼 그의 몰락이 가져온 충격파는 크다.

암스트롱은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회 연속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하면서 사이클 황제로 군림했다. 그의 굴곡진 인생사가 덧붙여진 승리의 기록은 곧 전 세계에 사이클 열풍을 불러왔다. 암스트롱이 1997년에 암 환자를 위해 세운 자선단체 ‘리브스트롱’(Livestrong)에 5억 달러의 기부금이 모이며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2008년 잠시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완전히 사이클에서 은퇴한 뒤엔 각종 자선사업과 마라톤 활동 등으로 여전히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한 그의 업적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면서 암스트롱은 급격히 낭떠러지를 향해 내달렸다. 1999년 소량의 코르티코스테로이드가 발견됐을 때만해도 “안장에 쓸린 상처 치료용 약물에 포함된 것”이라고 반박, 의혹을 비켜갔지만 동료들의 잇달은 증언과 증거가 포함된 USADA의 보고서 앞에선 “마녀사냥”이란 항변이 통하지 않았다.

늘 사이클 행렬의 맨 앞에서 영광을 이끈 암스트롱에겐 이제 그 어느 대회도, 단 한 대의 사이클도 허락되지 않는다. USADA는 이미 지난 8월 암스트롱이 앞으로 선수나 코치로 활동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설상가상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도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 용품 업체 나이키와 주류업체 안호이저부시 등 후원사는 등을 돌렸다. 암스트롱과 명예훼손 소송전을 벌인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정부도 법정에서 상대해야 한다.

그나마 나이키는 리브스트롱에 대한 지원은 계속해 나갈 뜻이 있다고 밝혀 자선사업의 명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다. 암 환자들이 암스트롱에게 받은 건 돈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그를 보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그의 이름이 지워진 채 텅 빈 공백으로 남은 투르 드 프랑스의 7년 역사보다 더한 실망감과 허무함이 암스트롱이 남긴 마지막 발자취가 돼 버렸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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