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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23> 대안적 자본주의 모델, 몬드라곤 협동조합...스페인 몬드라곤
[몬드라곤(스페인)=이해준 문화부장]12박13일에 걸친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북부 바스크 자치주의 작은 마을인 몬드라곤(Mondragon)이었다. 바스크어로 아라사테(Arrasate)라고 하는 몬드라곤은 관광지가 아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지역의 피레네 산맥 서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인구가 3만명도 안되는 작은 마을을 관광 목적으로 찾는 외국인은 찾기 어렵다.

우리가 그곳을 찾은 것은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인 몬드라곤 협동조합(Mondragon Cooperative) 때문이었다. 한국에도 꽤 알려져 관련 서적까지 출판된 몬드라곤은 기적의 땅이다. 56년전인 1956년 5명이 만든 협동조합이 지금은 120개 기업에 8만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연간 매출액 150억유로(22조5000억원) 규모의 스페인 7대 기업으로 성장한 곳, 특정 대주주가 경영권을 휘두르지 않고 노동자 등 조합원들이 주인인 곳, 그러면서도 혁신을 거듭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곳, 유럽을 뒤흔드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단 1명의 종업원도 해고하지 않은 곳, 그래서 자본주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 바로 그 몬드라곤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20여년 동안 경제신문 기자로 현장을 누비면서 경제력 집중, 소득과 부의 양극화, 계층간 갈등, 공동체의 파괴 등 많은 문제점을 보아왔던 필자는 ‘몬드라곤 기적’의 비밀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소비자 협동조합 연구와 참여를 병행해온 아내는 꿈에 그리던 곳을 방문한다는 흥분에 휩싸였다. 부모의 열렬한 의기투합에 아이들도 “도대체 뭐길래?”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120개 기업에 8만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몬드라곤협동조합그룹(MCG) 본부(헤드쿼터). 연간 매출액이 22조원을 넘지만 모든 조직이 탈중심화돼 있어 본부에는 60명만이 인력과 재무관리, 내부 협력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몬드라곤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4시간 달려 빌바오에 도착, 하루를 묵은 후 다음날 지역버스를 타고 몬드라곤으로 향했다. 빌바오~몬드라곤은 약 60km. 산등성이와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1시간 반 정도 달렸다. 유럽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이 산골짜기 외진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본부 로비에 들어서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작은 흉상이 눈에 띄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씨앗을 뿌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호세 신부가 이곳에 부임한 것은 스페인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1941년. 그는 1943년 기술학교를 설립, 가난과 좌절에 빠져있던 젊은이들을 모아 자립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 사회적 유대, 휴머니즘 등 새로운 가치를 가르치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다 1956년 5명의 젊은이와 난로를 생산하는 최초의 노동자 협동조합 울고르(ULGOR)를 설립했다. 5명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 작은 씨앗이 오늘날 세계 최대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호세 신부의 흉상을 구경하며 로비에서 기다리니 미켈 레자미즈 대외협력 이사가 나타났다.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았던 그는 우리를 가족처럼 맞아주었다. 영상물까지 보여주면서 몬드라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사업장까지 안내해 주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씨앗을 뿌린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흉상. 1941년 몬드라곤 주임신부로 부임해 1956년 5명의 젊은이와 함께 만든 소규모 협동조합이 오늘날 대기업의 모태가 됐다.

몬드라곤에서 30년째 일하고 있다는 그는 먼저 본부(헤드쿼터)를 소개했다. 총 60명이 인력과 재무 관리 및 내부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거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각 협동조합에 주어 본부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호세 신부가 첫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몬드라곤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며 “불황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조합원들의 유대를 바탕으로 헤처나가 지금은 유럽과 중국, 멕시코 등 17개국에 77개 사업장을 거느린 국제기업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120개 기업이 다리(leg)라고 부르는 4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개 부문은 제조업(Industry), 금융, 유통, 지식정보 부문이다. 모두 사회의 필요에 대응해 만든 기업이다.

제조업의 경우 스페인 4대 세탁기 제조업체인 파고르(FAGOR, 울고르 후신)를 비롯해 엘리베이터의 오로나(Orona), 자전거의 오르베아(Orbea), 태양전지판의 에키숨(Ekisum), 철골구조 전문인 우르사(Urssa) 등 각각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즐비하다. 금융부문에선 1959년 노동자 금융(신용)조합으로 설립된 ‘카이자 라보랄(Caja Laboral)’이 지금은 365개 지점을 거느린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고, 1964년 설립된 사회복지조합인 라군 아로(Lagun Aro)는 연금 등 사회보장을 담당하고 있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주요 기업과 대학이 몰려있는 캠퍼스. 오른쪽 건물이 4000여명의 학생과 종업원들이 공부하고 있는 대학이며 분지의 가운데 공장이 스페인 5대 세탁기 제조업체인 파고르다.

레자미즈 이사는 “몬드라곤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사회”라며 “조합원이 주인으로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1인1표로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지분율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통합을 위한 임금 원칙도 흥미로웠다. 실적이 나빠져도 임금의 80% 이상을 지불하고, 아무리 잘돼도 10% 이상의 추가 소득을 가져가지 않는다. 이익도 각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배분한다. 한국의 재벌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익이 대주주에 돌아가지 않고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마당에 이런 방식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의 질문에 레자미즈 이사는 지속적인 교육과 기술개발, 혁신, 투명경영, 민주적 조직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아무리 이상이 좋아도 기술에서 앞서지 못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몬드라곤은 14개 R&D 센터에 1400명이 근무하고 있고 716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진정한 참여가 민주적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원칙 아래 매월 협동조합 회의를 통해 기업실적을 투명하게 공표하고 참여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영향도 궁금했다. 실제 몬드라곤의 수익은 금융위기 이전의 연간 5억~8억유로에서 2008년 이후엔 이의 10분의1 수준인 7000만유로 안팎으로 급감했다. 2011년에는 1억5000만유로로 다소 늘었지만 낙관은 이른 상태다. 몬드라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레자미즈 이사는 “스페인 전체적으로 26%의 기업이 도산했지만 몬드라곤은 1.6%에 불과한 2개 기업이 문을 닫았다”면서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교육을 통해 올해 130명을 재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파고르의 경우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주 5일에서 4일 근무제로 바꾸고 임금 5%를 줄이는 등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몬드라곤협동조합그룹(MCG)의 대형 유통체인 협동조합인 에로스키 매장 내부 모습. 각종 농산물에서부터 공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곳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조합원으로 에로스키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설명을 듣고 영상까지 감상한 다음 본부 건물 앞 언덕에 서니 저 아래쪽 분지에 공장과 대학건물 등 협동조합 캠퍼스가 펼쳐졌다. 바로 저곳에서 새로운 대안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레자미즈 이사와 함께 소비자 협동조합인 에로스키(Erosky) 매장을 돌아볼 때도 야릇한 흥분이 지속됐다. 유기농산물 중심의 한국 협동조합과 달랐지만 활기가 넘쳤다.

긴 시간을 내 몬드라곤을 소개해주고 현장까지 안내해준 레자미즈 이사와 헤어지면서 새로운 세상에 잠시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이 과연 가능할까 하고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나에게 몬드라곤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다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hjlee@heraldcorp.com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지난해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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