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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가 돼서도 조국을..’ 캄보디아 근현대사 산증인 시아누크 前 국왕 영욕의 89년
[헤럴드경제=윤현종기자] “나의 재를 왕궁에 보관하라”

89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지난 1월 남긴 유언이다.

시소와스 토미코 캄보디아 왕자는 시아누크 전 국왕이 “심장이 좋지 않아서 치료차 베이징에 9개월 간 체류해왔다”면서 고인이 현지시각 15일 오전 2시25분에 숨졌다고 확인했다.

1922년에 태어나 1941~1953년, 1993~2004년 2차례에 걸쳐 국왕을 지낸 고인은 독립, 베트남전쟁,크메르루주 정권의 학살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영욕이 교차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잦은 외침에 시달리던 동남아시아의 소국(小國) 캄보디아를 중립국으로 만들고자 애썼다. 1953년 프랑스 보호령 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이끌었고,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는 군사동맹 불체결을 선언했다. 3년 뒤인 1957년에 그는 영세중립법을 공포하고 1961년 라오스 국제회의를 제창하는 등 국가의 중립화에 공헌했다.

그러나 시아누크의 이같은 정치적 이상은 크메르루주의 집권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1975년 캄보디아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주창한 크메르루주에 의해 장악되자, 사아누크는 폴 포트가 이끄는 정권의 상징적인 국가 수반이 됐다. 그러나 1년 만에 크메르루주에 의해 직위를 빼앗기고 정치적 은퇴를 강요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후 그는 중국과 북한에서 장기간 망명 생활을 하며 국가회복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1991년 귀국하여 캄보디아 과도정부 수반에 선출되었으며, 1993년 9월 입헌군주제로의 헌법개정으로 왕위에 복귀했다.

그는 2004년 건강문제로 퇴위해 신병 치료차 여러차례 중국을 오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웹사이트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했다.

현재 캄보디아는 내전의 상처를 씻고 앙코르와트 등 문화유적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동남아의 관광대국으로 발돋움 중이다.

시아누크의 유언은 이처럼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을 사후에도 지켜보고 싶은 듯, 의미심장하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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