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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금단의 땅’ 중난하이로 가는길
아무나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최고지도자들 집단거주지…중국 세대별 역대 지도부 면면 살펴보니…
중국 차세대 지도부가 전원 확정되는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1월 8일 개최 확정ㆍ이하 당대회)’가 정확히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중국 공산당원 8060만명(2011년 공산당 공식 집계)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발된 2270명이 이번 당대회가 열릴 베이징 인민대회당 레드카펫을 밟는다. 그중에는 중국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던 농민공 출신도 섞여 있다.

물론 이들은 중국 인구 13억5000만명(2011년 중국 국가통계국 기준)과 공산당원을 대표하는 약 ‘60만분의 1’이다. 그러나 당대회 폐막일에는 이 2270명 중에서도 당 중앙위원회 위원 200여명과 후보 위원 160여명이 선출된다.

우리가 통상 지칭하는 중국 최고지도부는 이 360여명 중에서도 ‘엄선된’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다. 이들은 베이징 중난하이에 모여 산다. 현재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이곳은 현대 중국의 국부(國父)로 통하는 마오쩌둥 이래 역대 최고지도부의 보금자리다.

아무나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곳 ‘중난하이’. 여기를 거쳐간 주인들의 면면도 범상치는 않다. 혁명(전쟁), 학력(유학), 나이, 특정 지역 관료 경험 등 각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중국 지도자들을 세대로 구분하는 방식에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내외(학계 포함)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덩샤오핑의 ‘세대 구분’ 언급 이래 공산당 공식 자료에도 이 기준을 차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을 이끌었던 1세대 지도부의 리더는 마오쩌둥, 2세대는 덩샤오핑, 3세대는 장쩌민, 4세대는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이다.

▶1세대(집권 1949~1976년) 공산혁명ㆍ전쟁 경험=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샤오치(劉少奇) 등 중국 1세대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창당(1921년)에 기여했거나 그 직후 가입했다. 숱한 내전에서 동고동락한 동지들이기도 하다. 이 중 마오쩌둥은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 재직 중 공산당 창당과 함께 입당했다. 저우언라이와 류샤오치는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 유학 중 공산당과 인연을 맺은 케이스다.

이들 모두는 공산당의 홍군(紅軍ㆍ1927년 8월 1일 창군한,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 소속이었다. 당시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패해 1934년부터 1년간 1만2000㎞를 걸어서 후퇴한 대장정에 참가했다. 이들은 공산혁명 시기 이 같은 고난을 함께 겪으며 중국 최고 엘리트로 성장했다. 


▶2세대(집권 1977~1992년) 문혁(문화대혁명) 박해ㆍ개혁개방=덩샤오핑, 자오쯔양(趙紫陽), 후야오방(胡耀邦) 등 2세대 지도부는 보다 체계화된 중국 공산당의 테두리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하 문혁ㆍ1966~1976)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은 그룹이며, 장기간 중앙정치로 진입하지 못했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에 적극 동참해 1978년 개혁개방을 이끌기도 했다.

덩샤오핑은 문혁 시작과 함께 반(反)마오쩌둥 일파로 지목돼 당의 일체 직무에서 해임당했다. 1969년부터 4년간 장시 성의 트랙터공장에서 일했다. 그의 장남 덩푸팡(鄧樸方ㆍ68ㆍ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은 문혁 기간에 홍위병(당시 문혁을 이끌던 마오쩌둥의 추종세력)에 쫓겨 4층 건물에서 떨어져 영구 장애가 되기도 했다.

덩샤오핑의 경제고문 자오쯔양도 1966년부터 5년간 문혁으로 박해를 받아 공장 노역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덩샤오핑의 핵심 심복이었던 후야오방은 문혁의 여파로 1966년 공산주의청년단(이하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직에서 물러났다.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은 모두 덩샤오핑 복권과 함께 중앙정치무대로 돌아와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했으나 1989년 6ㆍ4 톈안먼 사태와 연루돼 재차 실권했다.

▶3세대(집권 1992~2002년) 해외유학ㆍ기술관료ㆍ상하이방ㆍ연령 규정=3세대 지도부의 대표 인물은 장쩌민(국가주석), 주룽지(朱鎔基ㆍ국무원 총리), 리펑(李鵬ㆍ전인대 상무위원장), 리루이환(李瑞環ㆍ정협 주석) 등이다. 이들은 1940년 이후 공산당에 충원됐고, 사회주의 체제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 중 장쩌민, 리펑, 리루이환은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 필요한 전문기술을 배우기 위해 러시아 등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때마침 실시된 개혁개방에서 이들이 습득한 기술과 경험이 지도자의 자질로 중시됐다. ‘최고지도부=기술관료’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중국 공산당 창당 이래 자연과학ㆍ응용과학ㆍ재정 전공 출신의 기술 분야 고위 관료 비중이 50%를 넘긴 시기는 3세대가 유일하다.

이 시기에는 상하이 시장 출신으로 그곳에서 기반을 다진 장쩌민의 후원 아래 상하이를 근거로 한 정치인들이 대거 최고지도부에 진입해 ‘상하이방’으로 불리는 파벌이 생겨나기도 했다. 아울러 이때부터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종신제를 폐지하고 최고 연령을 제한(68세)하는 규정이 ‘조례’ 형태로 명기됐다.

▶4세대(집권 2002~2012년) 고학력ㆍ오지 경력ㆍ공청단파=후진타오(현 국가주석), 원자바오(현 국무원 총리) 등을 중심으로 한 4세대는 절대다수가 고학력자로 채워졌다. 후진타오는 중국 이공계 명문인 칭화대 수리공정과, 원자바오는 중국 베이징지질대학 석사 과정 출신이다. 4세대 정치 엘리트를 구성하는 당 중앙위원 중 석ㆍ박사 등 최고학력자 비중은 22%로, 역대 최고다.

아울러 오지 근무 경험 등 다양한 경력은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검증 수단으로 중시됐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모두 각각 시짱(티베트) 자치구와 간쑤 성 등 중앙과 먼 지역에서 관료 능력을 인정받았다.

공청단 출신 등 특정 파벌의 입김도 배제할 수 없는 요소였다. 공청단은 공산당 영도 아래의 청년 군중조직으로, ‘공산당의 예비 역량’으로 규정된다. 후진타오, 원자바오 모두 공청단 출신이다. 후진타오 집권 이후 공청단 출신 150명이 차관보급 이상 요직에 배치됐다.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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