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 김성진> 누가 스포츠 스타를 흔드나
이름난 인사를 영입하면 그에게 우호적인 유권자들의 관심과 표심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 이런 일을 빚어냈다. 하지만 다시 도복끈을 졸라매고 땀 흘려야 할 김재범의 가슴 한쪽에 난 상처는 문신처럼 남는다.


한국 스포츠의 위상은 국력이나 인구, 스포츠 저변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높다.

월드컵 축구 4강, 하계 올림픽 3회 연속 톱10, WBC 야구 준우승 등 굵직한 대회는 물론이고, 대부분 종목에서 세계 상위권을 오르내린다. 미국이나 중국 등 엄청난 인구와 국력을 가진 나라들을 제외하면, 여러 스포츠에서 모두 강세를 보이는 국가는 많지 않다. 물론 왜곡된 학원 스포츠,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체육의 집중 육성 등 부정적인 요소에 빚진 부분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운동과 훈련에만 쏟아부은 선수와 지도자들의 구도자적인 노력의 힘이 가장 컸다.

지난여름 런던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을 따낸 김재범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김재범은 큰 기술이 없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피땀을 흘렸고, 하루 4차례 기도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았을 만큼 운동과 신앙밖에 모르는 선수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김재범은 런던올림픽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선수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ㆍ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범에게 공동 선대위원장 임명장을 전달한 것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한창 운동을 해야 할 김재범이 정치에 뜻을 가졌을 리가 있느냐며, 순진한 스포츠선수를 오염시켰다고 네티즌과 팬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김재범은 논란이 확산되자 “내가 생각이 짧았다. 그만두겠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밝히며 사태를 수습했다. 김재범은 “식사 자리인 줄 알고 갔다가 이렇게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재범에게 사전에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고, 김재범이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새누리당 경북선대위 측 관계자는 “김재범 선수가 경북도당 청년위원장과 친분이 있어 식사나 하러 오라고 초청했는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위원장 직을 제안하자는 얘기가 나와 이렇게 됐다”고 털어놨다.

선거도 중요하고, 표도 중요하다. 이름난 인사를 영입하면 그에게 우호적인 유권자들의 관심과 표심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 이런 일을 빚어낸 것이다. 도덕과 양심, 정의와 워낙 거리가 먼 부류로 치부되는 정치인들이야 한번 비난듣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힘들게 정상에 올라 다시 도복끈을 졸라매고 땀 흘려야 할 김재범의 가슴 한쪽에 난 상처는 문신처럼 남는다.

십수년 전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총수가 “우리나라 기업은 2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이 2류씩이나 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정치가 4류인 것은 여전한 것 같다.

withyj2@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