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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 외로움마저 벗이 되는 순간
단출한 캠핑장비 트렁크에 싣고 스마트폰도 안터지는 곳으로…혼자만의 시간, 진정한 영혼의 휴식을 맛보다
가을은 약간의 우울을 허락한다. 맹렬하게 내리쬐던 여름 태양빛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한결 누그러지면 우리 마음엔 습기가 찬다. 모두가 우울의 감정을 품지만 공유하진 못할 때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의 갈림길에 선다. 혼자만의 여행은 그 선택을 위한 배려다. 목적지도, 여행의 방법도 중요하지 않다. 가을 여행은 구태여 논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먼지 묻은 출근길 낙엽조차 훌륭한 핑계가 될 정도로 가을은 너그럽다. 하물며 바람도, 기온도, 햇살도 인간을 알맞게 품은 날씨는 홀로 캠핑을 떠나는 이유로 손색이 없다.

하늘이 꾸준히 높아지던 지난달 어느 날, 짐을 단출하게 꾸렸다. 텐트와 그라운드 시트와 매트, 침낭, 테이블과 의자, 랜턴, 조리도구 그리고 잡다한 용품을 한데 보관하는 팝업 유틸리티 박스가 전부다. 최대 384ℓ에 달하는 미쓰비시 RVR(Recreation Vehicle Runner) 트렁크가 넉넉하다 못해 텅 빈 느낌이다. 캠핑붐으로 마치 장비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캠프장에서 소외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잡는다. 고가의 장비가 주는 편리와 안락함보다는 일부러 불편을 즐기는 편이 캠핑 본래의 멋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캠핑 경력 7년의 강승준 씨도 충분하다고 안심시킨다. 아웃도어 브랜드 콜맨에서 마케팅 및 이벤트를 담당하는 강 씨는 크고 작은 캠핑대회를 주최해온 캠핑 고수다. 행여나 가을밤이 추울까 4계절용 웨더마스터 돔형 텐트와 2웨이 다운 컴포트 침낭을 추천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몸이 고생하면 안 된다며 매트도 2장을 건넸다. 그의 섬세함에 불안 대신 여유가 생겼다.

목적지는 경기도 남양주의 팔현계곡. 서울에서 1시간30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이지만 도시의 불빛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빽빽한 잣나무가 물리적인 거리를 따돌린다.
 
혼자라는 건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담긴 쓸쓸함만 걷어내면 오히려 더 활기찰 수 있다. 만날 사람도, 만나러 오는 사람도, 부르고 답할 사람도 없는 시간은 어떠한 목적의식이나 부채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다.

얕은 개울을 건너자 본격적인 산길이 나타났다. 산 입구에 옹기종기 몇몇 텐트가 들어섰지만 4륜구동으로 변경하고 좀 더 올라갔다. 산뜻한 도시남 같던 RVR가 씩씩한 엔진 소리와 함께 다부진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산길을 거침없이 오른다. 휴대전화 배경화면엔 어느새 ‘서비스 안 됨’ 표시가 찍혔다. 만날 사람도, 만나러 오는 사람도, 부르고 답할 사람도 없는 시간은 어떠한 목적의식이나 부채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다.

다만 혼자인 만큼 안전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내 몫이다. 야외에서 혼자 자는 건 그 자체로 위험을 내포한 일이다. 웬만한 캠프장은 전기를 예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잘돼 있어 걱정 없지만 외딴곳을 간다면 장소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계곡과 바로 맞붙은 지점은 절대 금물. 갑작스러운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는 속도는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레인재킷과 여분의 옷도 챙겨야 한다. 기온이 내려가면 텐트 안에서 집 안과 같은 따뜻함을 기대할 순 없다. 이때 발포성 매트는 바닥의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넉넉한 식수와 비상약은 필수다. 라디오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도 빼놓으면 안 된다.

안전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사이트를 구축했다. 처음 접한 장비들이지만 가볍고 설치하기 편했다. 붉은 노을이 잣나무 사이로 아득히 보일 때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계곡 초입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자 가슴 어딘가 대롱대롱 불안하게 매달려 있던 마음이 그제야 편안히 탁 놓인다.

책을 몇 권 집어왔지만 펼칠 필요는 없다. 무심히 흘린 시간이 스크린이 돼 펼쳐지고 잊힌 기억이 되살아나 상영된다. 혼자라는 건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담긴 쓸쓸함만 걷어내면 오히려 더 활기찰 수 있다. 고독은 그렇게 외로움마저 매료시킨다. 그리고 그조차 지루해질 즈음, 달빛을 맞으며 잠이 절로 왔다. 너구리인지 오소리인지, 하여튼 그만한 크기의 야생동물이 슬쩍 텐트 곁을 맴돌다 이내 시시해졌는지 돌아갔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혼자 가기 좋은 캠프장

▶팔현캠프장
=일부러 불편함을 찾아 즐기는 것이 캠핑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면 으뜸인 곳이다. 굳이 명당자리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울창한 잣나무숲 하나만으로 캠핑족의 발길을 잡아끌기 충분하다. 다만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멀고, 캠프장 초입의 매점도 저녁이면 문을 닫는다. 선착순 입장.

▶양평 산음자연휴양림=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에 캠핑 사이트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롭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도 양평의 산음자연휴양림은 화장실과 개수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예약을 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인근의 중미산자연휴양림도 호젓한 캠핑을 즐기기에 알맞다.

▶강화 함허동천시범야영장=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있는 함허동천야영장은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깊은 숲을 느낄 수 있다. 편의시설도 넉넉하다. 특히 가벼운 차림으로 마니산 바위 능선에 오르면 거친 산줄기가 어느새 들판으로 이어져 바다로 뻗는 광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부터 사이트까지 손수레로 장비를 날라야 하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선착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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