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과 가전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1946년 나온 ‘애니악’이다. 크기가 엄청 컸다. 어찌나 큰지 방이 따로 필요할 정도였고, 수천, 수만개의 진공관이 필요했다. 용량은 100MB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악은 인류가 만든 세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얻었다.애니악 이후 화두는 소형화였다. 크기를 작게 만들면서도 용량을 키우는 것은 숙제였다. 컴퓨터 안에 들어가는 집적회로(IC), 반도체를 작게 하면서도 연산능력을 수만배 키울 때마다 기술은 진화했고, 최첨단 기술은 글로벌 시대의 총아로 부상했다. 굳이 말하자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첨단기술에 적용돼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가전제품에서의 대용량화는 ‘나는 큰 게 좋더라’는 80~90년대 대유행했던 광고 카피를 연상케 한다. 제조업체 간 경쟁과 소비시장의 새 트렌드를 대변하는 것이다.
냉장고ㆍ세탁기ㆍTV 등을 키우고, 또 몸집이 커진 제품을 파는 것은 고부가가치 프리미엄을 겨냥한 것이다.
이는 라이프사이클 변화와 관련이 크다.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사 저장하려는 주부가 많아지다 보니 더 큰 냉장고가 필요해졌고, 큰 이불도 재빨리 세탁할 수 있는 초대형 세탁기가 유용해졌다. 인터넷의 발달과 연예ㆍ오락 등의 엔터테인먼트 접목, 스포츠 활성화에 따라 대형 화면의 TV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것은 TV의 크기 전쟁을 촉발시켰다.
대형 가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생기다보니 업체로선 고만고만한 중저가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벗어나 고가의 고프리미엄 제품을 파는 전략으로 집중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크기를 둘러싼 업계 간 경쟁은 기업의 사활과 직결되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용량 경쟁을 하면서 지나치게 경쟁하다 보니 서로 기술력을 도용하거나 활용하면서 때로는 소송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일은 국내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등 해외업체가 각각 정부를 앞세워 국내 가전업체의 세탁기ㆍ냉장고 판매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는 것도 기술력과 결합된 대용량 제품 견제구 행간도 담겨 있다는 평가다. 결론적으로 첨단가전의 ‘키ㆍ몸집 경쟁’은 포기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화두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