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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반성 없는 잘못된 역사인식이 일본 우경화의 주범
[헤럴드경제=김대우 국제팀장]

“일본은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했다는 사실을 너무 잊은 채 살고 있다. 피해자였던 주변국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걸 잊어버린 일본이 이상하다는 게 내 역사 인식이다..자국에만 치우친 편협하고 모자란 역사인식은 일본에 독(毒)이 될 뿐이다” ‘오겡키데스카(잘 지내나요)?’라는 대사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 감독이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이 첨예한 가운데 나온 이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인 대다수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실제 일본 국민들은 발언이후 그를 매국노로 몰아부쳤다.

그렇다면 대다수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은 어떤 것일까. 재일조선인 2세인 도쿄게이자이대학 서경식 교수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이란 책에 그 일단이 나와 있다. 일본 우파들 교육지침에 따라 교육받은 일본인들은 일본을 제국주의와 전쟁 가해국이 아니라 오히려 그 피해국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일부 극단적 군국주의자들 때문에 일본이 잘못된 길을 가 1937년의 중국 본토 침략과 1941년 진주만 기습 및 미국과의 전쟁으로 치달리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등장하기 이전 만주침략과 러일전쟁, 조선 식민지배, 청일전쟁, 을사늑약, 을미사변, 서구 열강들과의 의화단 사태 개입 등은 그들의 전범 리스트에서 배제돼 있다. 메이지유신과 다이쇼 데모크라시, 쇼와 초기의 ‘욱일승천’ 일본에 대한 다수 일본인들의 기억은 그들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그린 ‘언덕위의 구름’처럼 향수어린 무지개색으로 덧칠돼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때 식민지배가 한국에겐 근대화를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자금,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유무상 5억 달러를 건네면서 식민지시절 착취한 한국내 일본자산 환수 포기를 마치 시혜나 베푸는 듯 거들먹거렸다.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나 뉴라이트들마저 여기에 동조하는 판국이니 일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한일협정 제2조 “1910년 8월 22일(합병조약)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조항 속의 ‘이미 무효’라는 구절에 대해 일본은 당시엔 국제법상 합법이었지만 한일협정체결이후 비로소 무효가 됐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결국 일본은 합병과 식민지배를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독도문제나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위안부(성노예)를 동원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어디 내놔 봐!”하는 식이다. 우익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물론이고 아베 신조 전 총리나 노다 요시히코 현 총리, 겐바 고이치로 외상 등의 최근 발언 모두 이런 몰지각한 역사인식이 빚은 결과다. 주변국과의 민감한 영토문제, 나아가 용서받지 못할 과거사에 대해 거침없이 부정하는 일본의 역사인식은 국민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우경화 일색의 발언을 한다. 그만큼 많은 일본인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지만 독일은 과거를 철저히 반성했고, 일본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얼마전 런던올림픽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문양을 국가대표 체조팀의 유니폼에 버젓이 사용한 일본이다. 전쟁과 만행의 상징인 전범기를 선수들 유니폼으로 만들어 입히는데 하등의 거리낌도 없다. 올림픽무대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의 유니폼을 입은 독일 선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최근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의 근저에는 이 같은 반성 없는 과거사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마저 재단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지워버리는 집단기억상실증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는 감추고 싶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드러내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의 미래는 없다. 일본이 계속 그런 식으로 간다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 극우의 준동은 쇠락하는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한 초조감의 표현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있다. 그럴수록 더 극우화하고 국제사회에서 더 왕따가 되고 더 몰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문득, 박정희시대를 놓고 벌이는 과거사 논란을 벌이는 우리 현실이 오버랩된다. 박정희시대는 분명 공과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 최종판결에 일국의 대통령을 하겠다는 유력 대선주자가 두 가지 주장이 있다고 하고,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과거사 인식을 며칠만에 전향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도무지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역사인식이 바뀐 것인지, 바뀐척 하는 것인지..역사적 사실에 대해 공이나 과를 부정하면 역사의 반쪽 밖에 못 본다. 그런데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이들은 과연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려는 자세가 있는 지, 그럴 능력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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