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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 살인마는 없다
英 심리학자 브루스 교수
과학자·살인자 뇌구조 비교
자아 형성 결정적 요인 분석
유전 아닌 환경의 역할 규명


“전혀 그럴 줄 몰랐다.” “믿기지 않는다.”

경악할 만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아는 지인이나 이웃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보아온 이미지와 전혀 다른 범인의 포악성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범죄자들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한 괴물이었다면 우리는 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전 하버드대 교수이자 현재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인 세계적인 심리학자 브루스 후드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브루스 후드 지음·중앙북스)에서 소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타인의 입장’에 대해 치밀하면서도 명쾌하게 그 실체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획일화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뇌과학적인 원리와 발달심리학 등의 구체적인 논거를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뇌에 있는 1000억개에 달하는 세포들로 이뤄진 신경계의 작동이 성장과정에서 개인이 마주치는 환경에 반응하면서 천차만별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는 개인의 정서와 행동, 인지 및 태도를 결정하고 성격을 구성하게 되며 외부의 자극과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예기치 못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아란 결코 고정된 것이라 아니란 얘기다. 뇌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변하고 흩어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평소 선량한 모습의 사람이라도 돌변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바로 뇌의 작용에 의해 다변할 수 있는 자아의 허술한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의견은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의 ‘다발 이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그동안 자아란 존재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상수라 여겼던 것과 선을 달리한다. 자아는 사고와 행동의 총합이며, 우리의 자아도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행동과 기질, 성향을 얘기할 때 대세를 이룬 유전적 결정론은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환경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신경과학자 짐 팰런의 사례를 소개하며 환경, 외부조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짐 팰런은 사이코패스 살인자들의 뇌를 스캔한 것을 들여다보던 중 그들에게 안와피질의 활동이 결여돼 있는 것에 주목했다. 안와피질은 웃음과 같은 사회적 행동과 연관되며 여기에서 도덕적 판단, 충동적인 반사회적 행동조절을 담당한다. 이 부위의 활동이 저하된 사람은 자유분방한 유형이 되거나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놀라운 것은 팰런 자신의 뇌의 모습이었다. 사이코패스에게서 본 것과 같은 안와피질의 둔화현상을 보인 것이다. 한 달 뒤 그는 가족모임에서 이 같은 아이러니를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 여든여덟 살의 어머니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조상인 토머스 코넬이 1667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였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에 기록된 모친 살해의 첫 사례였다. 더욱이 그의 직계 조상 중에는 7명의 살인자가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팰런은 당초 유전자가 운명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고 믿는 과학자였지만 뇌영상과 유전자 연구를 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경직되게 바라보는 관점을 수정한다. 팰런의 경우 환경의 역할이 자신을 보호했으며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방식이 결정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 환경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자아가 발현된다. 가정적인 자아, 정치적인 자아, 고집불통인 자아, 감정적인 자아, 성욕이 강한 자아, 창조적인 자아, 폭력적인 자아 등 얼핏 상충돼 보이는 성질이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이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며 또래집단, 소유물, 취향, 정치적 성향 등 인류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식을 형성한다. 즉 우리의 성격을 바꾸게 만드는 것은 바깥세상이며 우리는 상황의 반영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20여년 전 발달심리학자로서 어린이들의 시각발달을 연구했던 저자는 아기들의 눈을 통해서 아기의 뇌를 들여다보는 연구를 진행한다.얼마나 오래 보는지를 보면 아기의 뇌가 무엇을 주목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눈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부터 바라본다. 이는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얘기다. 즉 우리가 경험하고 느낀 것,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 일, 친구, 취미 등 여러 요소들은 뇌에 흔적을 남기고 패턴을 만들어낸다. 사고와 행동을 계획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전전두피질, 강박장애와 관련된 꼬리핵 등 뇌를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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