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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궁에 빠질뻔한 ‘中 칭따오 원정 살인사건’
한국경찰과 인터폴의 협조로 범인 검거


[헤럴드경제= 이태형 기자] #지난 6월 28일 밤. 중국 칭다오 경찰 주재관인 안모 경감은 경찰청 인터폴계에 내국인 살인사건 발생을 보고했다. 피해자는 A(23ㆍ여) 씨로 27일 오후4시께 칭다오 청야구에 있는 록화림 공원 대나무 숲속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 씨는 발견 당시 바지가 벗겨져 있었고 목이 졸린 채 사망한 상태였다.

중국 공안은 A 씨가 한 남성과 같이 공원으로 들어간 뒤, 남성 혼자 공원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폐쇄회로(CC)TV로 확인했다. 피해자의 공중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한 공안은 국내 선불폰 ‘010-****-2252’ 번호의 사용자를 한국경찰에 확인해왔다.

#6월 29일. A 씨의 국내 주소지가 경기도 일산으로 돼 있어 사건을 배당받은 경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2팀은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에 이메일, 카카오톡 메시지, 보험 관계, A 씨의 남편인 B(53) 씨와 A 씨의 채권ㆍ채무 관계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그 결과 A 씨의 명의로 건강보험 2개와 생명보험 1개에 가입돼 있었다. 생명보험은 사망 시 3억60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었으나, 수령자는 지정돼 있지 않았다.

한편 공안에서 확인을 요청한 ‘2252’번의 선불폰은 국내 모 통신회사의 법인폰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폰의 사용내역을 확인, 경기도 시흥시에 전화를 건 사실을 확인했지만 법인 명의로 된 전화기만으로는 수사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 국제범죄수사대 2팀의 신명관 경사는 당시 이 회사 여직원 한 명의 주소가 시흥으로 돼 있는 것에 주목하고 조사에 착수, 통신회사 직원인 B 씨의 딸이 아버지를 위해 발급받은 폰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흥에서 통화한 사람이 B 씨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B 씨는 이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7일 체포돼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 구금 중이었다.

#7월 2일. 중국 공안은 전화번호 확인을 요청한 이후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 CCTV에 찍힌 피의자 사진이었다. 공안은 추가 설명 없이 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사진 한 장만으로는 신원 확인이 쉽지 않았다.

경찰은 앞서 30일 B 씨가 수원구치소로 이감되기 전 경찰서 유치장을 찾아 B 씨의 면회 기록을 확인했다. 여기서 B 씨와 교도소에서 같이 생활한 C(55) 씨가 면회를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면회 대화 내용 기록에는 “공사 끝났냐”, “응, 공사대금 달라”, “대금 떼 먹은 적 없다. 기다려라”라는 등 무직인 두 사람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 내용이 아니었다.

#7월 10일. B 씨와 C 씨의 대화를 토대로 사건의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C 씨의 인천항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다. C 씨는 6월 26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30일 다시 입국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또 중국 공안에서 보내 온 사진에 있는 인물과 C 씨의 인상착의가 거의 일치했다.

경찰은 물적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C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C 씨에 대해 출국금지했다. 주범으로 C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담당 수사관은 경찰청 인터폴계를 통해 살해 용의자로 C 씨를 특정했다고 전달했다. 이 내용은 다시 칭다오 주재관을 통해 중국 공안으로 전해졌다.

#7월 16일. 경찰은 통신수사를 통해 서울 양천구 신정동 모 고시원에 숨어 있던 C 씨를 검거했다. 고시원 쓰레기통에는 C 씨가 B 씨와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이는 편지도 발견됐다.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를 짜 맞춰 본 결과, ‘빌린 돈’이라는 표현이 있었고, “편지를 읽은 후에는 버려라”는 내용이 있었다. 체포된 C 씨는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술녹화실에서는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녹화실을 나와서는 “내가 (범행을) 인정하면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들을 했다.

#7월17일. C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물적 증거가 없는 상태였고, 담당 검사도 영장 발부가 어려울 것 같지만, 청구는 해 보자며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맞았다. 다행히 법원은 정황상 구속이 필요한 사안으로 판단, 영장을 발부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구속 후 10일 이내에 검찰로 송치하지 않으면 C씨를 놓아줘야 할 판이었다. 24일 채취한 C 씨의 구강상피세포는 경찰청을 통해 주재관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26일 사건은 고양지청으로 송치됐다.

#8월 1일. 드디어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했다. 사망 현장에서 피해자의 목에 있던 붕대에서 채취한 DNA와 C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중국 공안으로부터 통보받았다. 통상적으로 검사결과 등 자료를 요청할 경우 자료의 원본은 외교통상부 외교문서 가방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면 보통 3~4일이 소요된다. 그러나 사안이 시급할 경우 원본은 국제 우편으로 하루만에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 인터폴계 직원은 하루에 10통 이상 전화를 걸어 현지 주재관에게 검사 결과를 보내줄 것을 재촉하고 확인전화를 건다.

한편 살해현장에서 발견된 정액은 C 씨의 것이 아니라는 결과도 같이 전해왔다. 이후 조사에서 B 씨와 C 씨가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을 성폭행으로 위장하기 위해 C 씨가 출국하기 전 서울 종로 모처에서 노숙자의 정액을 구해 피해자를 살해한 현장에 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최종 수사 결과 지난 2005년 중국으로 이민 갔다 2010년 한국을 다시 찾은 피해자는 B 씨 일당의 공모로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B 씨 일당은 사전에 범행을 철저히 계획한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속속 밝혀졌다. 신원확인을 빨리 할 수 있도록 해서 보험금을 수령하려고 피해자에게 거소지 등록을 하라고 했던 B 씨의 꼼수는 결국 미궁에 빠질 수 있었던 사건을 푸는 단초가 됐고, B 씨 자신에게는 자충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6월28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피해자와의 협의이혼 판결을 받기 위한 출석기일을 받아 놓은 B 씨는 범행날짜를 27일로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은 외국에서 발생하면서 수사 초기부터 어려움에 직면할 뻔 했다. 그러나 중국 공안과 현지 한국 경찰 주재관, 그리고 경찰청 인터폴계, 국내 수사를 맡은 경기청 국제범죄수사대 간에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면서 조기 해결할 수 있었다. 중국 공안이 사건 관련 자료를 보내주고 이를 국내 수사에 활용하는 한편, 국내 수사 결과를 공안에 전달하면 공안이 확인해 주는 등 공조 체계가 원활히 가동된 덕분이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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