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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영욕의 역사’ 품은 궁…현대미술과 만나 맥박이 뛰다
국립현대미술관 19일부터 ‘덕수궁 프로젝트’ 展
고종의 한 고스란히 남아있는 ‘함녕전’
순종이 사랑하는 아내 잃었던 ‘석어당’

서도호·하지훈·이수경 등 유명작가
영상·조각·퍼포먼스 등 50여점 전시
특유의 상상력으로 근대사 재해석


덕수궁 함녕전은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고종이 1907년 황제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난 뒤 1919년 승하하기까지 머물렀던 침전이다. 고종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이 공간에 ‘집의 작가’ 서도호는 새로운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바로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이다.

사랑하는 두 아내(명성황후와 엄비)를 잃은 고종의 침전에 ‘늘 보료 3채를 깔았다’는 상궁의 증언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왜 3채일까” “명성황후와 엄비의 부재(不在)를 대신했던 보료일까?” 등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고리를 연결해가며 리서치와 설치작품 제작, 퍼포먼스, 영상작업을 시도했다. 서도호는 먼저 함녕전을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청소하고, 마름꽃무늬 능화지로 도배해 주인 없는 침실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곤 안무가(정영두)와 고종의 침실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을 퍼포먼스로 재현하고 영상으로 담았다.

그의 작업에는 국가가 풍전등화에 처한 상황에서 군주로 살다간 고종(독살설도 있다)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불안이 오버랩되며, 인간 고종이 우리 앞에 다시 살아온 듯하다. 서도호는 “역사는 스토리텔링이라 생각한다. 팩트들 사이에 수많은 틈새가 있다. 그 틈새에 어떤 이야기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수많은 갈래의 팩션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했다.
 
덕수궁 덕홍전에 기이한 형상의 의자를 들여놓은 디자이너 하지훈의 설치작업‘ 자리’. 현대식 의자의 표면에 덕홍전의 고풍스런 내부가 반사되면서 왜곡과 변형이 이뤄진다. 관객은 이 낯선 의자에 앉아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도심 한복판, 400년 역사를 품은 덕수궁이 현대미술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덕수궁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재해석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이는 ‘덕수궁 프로젝트’를 19일 개막한다. 전시는 중화전,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 등 덕수궁의 6개 전각과 후원, 그리고 덕수궁미술관(실내)에서 열린다. 참여작가는 12명으로 서도호, 하지훈, 이수경, 김영석, 정서영, 성기완, 류재하, 최승훈+박선민 등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음악가가 망라됐다. 이들은 저마다 ‘남다른 이미지네이션’을 통해 궁궐 곳곳에 흥미로운 현대미술을 풀어놓았다. 400년의 궁궐은 이들이 펼친 9가지 프로젝트로 인해 다시금 맥박이 뛰고 있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작가 이수경은 덕수궁 석어당에 수천개의 LED조명으로 ‘눈물’ 조각을 설치했다. 석어당은 임진왜란으로 피신갔던 선조가 서울로 돌아와 머문 곳이자, 숨진 곳이다. 또 순종이 황태자시절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이 새겨진 석어당에 눈물 한 방울이 응결된 듯한 조각을 놓음으로써 형언할 수도, 감지할 수도 없는 영역의 세계를 조용히 비춘다.

석어당에는 또 한복디자이너 김영석이 덕혜옹주의 한 시절을 되살려냈다. 빼곡하게 방을 채운 개화기 시대의 가구와 병풍, 공예품은 모두 김영석이 수집해온 것들로,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한 옹주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덕수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석어당에 설치된 이수경의 조각‘ 눈물’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군주의 집무실이었던 덕홍전에 은빛 크롬으로 마감한 기이한 의자를 가득 들여놓았다. 천장의 고풍스런 단청이 최첨단 현대의자의 표면에 비치고, 다시 반사되면서 왜곡과 변형이 이뤄진다. 관객은 이 낯선 의자에 앉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마침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은 음악과 함께 여인의 흐느낌, 찻잔 부딪치는 소리,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최승훈+박선민팀은 ‘결정(結晶) vs. 결정(決定)’이란 작품에서 경운궁으로 불리던 시절의 덕수궁이 지금의 3배 넓이에, 170동 이상의 전각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옛 영화는 간데없이 텅 비어버린 덕수궁 한 켠에 크리스털 블록을 펼치고 쌓아올렸다. 이 세상 모든 종류의 결정(結晶)은 이내 부서지고 스러지며, 또 다른 질서에 편입된다는 ‘무상함의 구조’를 환기시킨 작업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궁궐과 현대미술을 접목시킨 시도는 처음으로, 12명의 작가가 모두 덕수궁에 푹 빠져들었다”며 “덕수궁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예술가의 상상력과 해석으로 풀어냄으로써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12월 2일까지, 관람료 성인 2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초중고 무료. (02)2188-600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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