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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 죽여아하는!
소설 '은닉'…게임처럼 기발하고 놀라워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화제가 된 소설이 있다. 바로 배명훈의 장편소설 <은닉>(2012. 북하우스)이다. 소설은 연방의 속한 킬러인 주인공 ‘나’가 11년 만의 휴가로 선택한 나라 체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온 나는 휴가지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는다. 연극 공연을 관람 후 무대에서 본 것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임무로 이전과는 달랐다. 놀랍게도 그 앞에 나타난 이는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한 친구이자 첫사랑 은경이다. 

나는 은경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 영재들이 모인 학교에서 처음 만난 은경은 비밀이 많았다. 북의 고위 간부의 딸인 은경이를 위해 그 학교가 지어질 정도의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졌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한 그녀, 체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였지만 지금은 조직을 떠난 조은수와 연락을 취한다. 은수는 뛰어난 요원으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준 유일한 친구였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을 이용하는 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하는 게 급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는 가짜 은수를 내세워 나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진짜 은수가 나타나 구해준다. 은수를 통해 은경이 처한 상황을 듣고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첨단 무기의 개발과 그 이면에 숨겨진 막강한 음모는 서서히 드러난다. 적과 쫓고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은수가 곧 죽을 거란 사실을 확인한다. 자신들은 그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어쩌면 어린 시절 부터 은수와 나를 알고 있는 은경의 계획인지도 모른다. 심연에 숨겨진 악마의 기질은 인간 모두에게 존재하니까. 소설 속 나의 생각처럼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나를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내 일부를 빼앗긴 게 아니라, 어차피 내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숨겨진 부분을 누군가가 보다 효율적으로 점령해준 것뿐이었다. 내가 아는 나는 거의 그대로였다. 다만 나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나의 영역이 누군가에 의해 새로 발견되었을 뿐. 그런데 그 부분이 그렇게 넓을 줄은 나도 몰랐다. 내 의식이 평생을 장악해온 부분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거대한 나. 그리고 그 깊고 거대한 나는 시간을 거슬러 공간을 초월해 결국 자신의 영역까지 이어져 있었다. 대자연의 일부, 우주의 질서를 그대로 간직한 나. 그것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없던 악마를 일깨우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잠재해 있던 악마를 일깨우는 고정이었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악마가 아니라, 나라는 개념이 발생하기 훨씬 전, 생명의 보다 근원적인 부분에 잠재해 있던 악마를 불러내는 일. 중추신경계 어딘가에 남겨진 기억이 아니라 유전자 안에 새겨진 기억들.’ p. 242

독특하고 놀라운 소설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 소설에 대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SF라 할까. 남과 북이 적이 아닌 연방 정부를 구성한 미래의 어느 날의 모습이라고 하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게임과 같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여야만 하는, 좀 더 강하고 놀라운 무기를 개발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 말이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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