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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이안 ‘천년의 영화’가 스친다
‘아시아 마지막 휴양지’로 각광받는 베트남…앙코르와트보다 5세기전에 지은 미손 유적지서 발길이 멈춘다
과거와 현재‘완벽한 오늘’보다 더 이른 어제가 공존하는 곳…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작지만 거대한 도시

전쟁이라는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건물이 무너진‘베트남의 앙코르와트’미손 유적지…

수백 킬로미터 해안선따라 자리한 다낭의 5성급 리조트…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잠시‘나’를 내려놓는다


[다낭(베트남)=고승희 기자] 시간이 머물렀다. 그을린 피부와 선량한 검은 눈을 가진 베트남 남자는 솜씨껏 ‘호찌민 찬가(‘호아저씨가 기쁜 승리를 함께 하셨네’ㆍ가수 팜투웬ㆍ1975년)’를 불렀다. 오후 6시, 땅거미 내려앉는 거리에선 비틀스와 존 덴버, 1~2년쯤 뒤처진 K-팝(Pop)이 흘렀다.

과거와 현재, ‘완벽한 오늘’보단 조금 더 이른 어제가 공생하는 곳.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작지만 거대한 도시들은 발길이 끊어진 듯 고요하다. 푸른 눈의 이방인이 노니는 은은한 빛의 거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지금 여기는 베트남의 허리. 전쟁의 흔적은 남았지만, 상처는 지웠다. 이제 ‘아시아의 마지막 휴양지’로 불리는 이곳엔 최고급 리조트 마당 앞으로 야자수 줄지어 선 바다(다낭)가 손짓한다. 일본과 중국의 정취를 옮겨심은 오색등의 거리(호이안)와 학덕 높은 왕족들이 시 한 수씩 주고받았을 천년 도읍(후에)도 여전히 숨쉰다.
 
앙코르와트보다 무려 5세기 전에 지어졌지만 현지인들조차 ‘베트남의 앙코르와트’로 부르는 미손 유적지는 하늘로 향해 가는 적빛의 절벽 형상과 그 붉은 기운을 압도하는 울창한 숲의 위엄이 절경을 이룬다. 
                                                                                                                                                             [사진제공=하나투어]

▶시공을 가둔 동남아 속 유럽, 다낭ㆍ호이안=‘고엽제 대청소’가 한창인 다낭(Da Nang)공항을 빠져나와 30여분 차로 달리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땅이 이방인을 맞는다. 수백 킬로미터를 따라 자리한 해안선에는 5성급 리조트 호텔들이 위용을 뽐내지만, 인적은 드물다. 저마다 카지노며 전용해변(선라이즈, 하얏트)을 가졌다. 리조트 호텔의 작은 풀에서 하얀 물거품 피어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즐기고, 속살거리는 바람이 드나드는 야자수 아래에서 책 한 권 펼쳐들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다.

여유로운 한낮을 보냈다면 어둠이 빨리 찾는 저녁엔 거리로 나서는 게 ‘여행자의 법칙’이다. 다낭에서 40여분 차로 달리면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Hoi An) 거리를 만날 수 있다. 개발제한으로 동서양의 문화가 내밀하게 뒤섞였다. 16세기께 유럽과 중국, 일본 상인들을 맞으며 동남아 최대 무역항으로 성장한 탓이다.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내원교(來遠橋)를 사이에 두고 중국인 거리와 일본인 거리로 양분된다.

긴 시간 이어진 낯선 걸음에 ‘일본인 마을’까지 생겨났다. 비슷한 생김새의 동양인에게 ‘곤니치와’를 먼저 건네는 현지인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활기찬 인사들이 오가는 무렵이면 옛거리의 고즈넉한 풍경은 또 한 번 시계를 멈춰 세운다. 투본강을 끼고 늘어선 낮은 건물들은 이 무렵 은은한 등불을 켜고 어둔 밤, 별빛보다 찬란한 조명으로 물든다. 호이안의 야시장은 ‘한여름밤의 꿈’이다.

▶작지만 거대한 ‘사라진 왕조들’ 후에=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미손(Mysonㆍ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순식간에 몰려온 먹구름이 빗줄기를 쏟아내도 성스럽다. 힌두교도였던 참(CHAM)족들이 시바신을 모시기 위해 만든 신전이기 때문이다. 호이안에서 40㎞를 달려가면 세계적인 명함이 무색할 미손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돈되지 않은 땅에 발길이 머뭇거려도, 시바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오솔길을 따라 고화 속에 나올 법한 돌다리를 서너 번 건너면 ‘베트남의 앙코르와트’와 마주한다. 이곳 역시 ‘전쟁’이라는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쇠락한 참파 왕국의 흔적은 ‘참 박물관(다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미손에서 출토된 유물을 포함해 2~15세기까지 번성했던 참파왕족의 과거와 현재가 무방비 상태로 늘어서 있다.
 
백성의 눈물로 일군 카이딘 왕릉.

금성홍기 펄럭이는 후에(Hue)왕궁은 1802년부터 1945년까지 존속한 응우웬(Nguyen) 왕조의 궁이다. 이곳은 베트남전으로 인해 70채의 왕궁이 파손됐지만, 현재 유네스코와 한국자금(EDCF)으로 복원 중인 베트남 최초의 세계문화유산(1993년 지정)이다. 때문에 궁 안의 편전엔 기술한류가 자리했다. 삼성전자의 대형TV를 통해 국내 기술진이 복원한 VCR영상이 쉼없이 나온다.

응우웬 왕족의 12대 황제 카이딘 황릉(KHAI DINH DE)은 미소년 같은 왕의 외모답게 화려하다. ‘프랑스의 인형’ 노릇을 하면서도 그 나라의 유리공예에 빠진 카이딘 황제는 무려 11년 동안 왕릉을 짓게 했다. 유럽의 고성을 빼닮은 위압적인 검은빛의 외벽과 가파른 계단을 타고 승천하는 용조각, 황금으로 치장하고 형형색색 유리와 도자기로 벽을 채워넣은 이곳은 결국 베트남 왕조의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인 왕릉으로 남았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후에를 가로지르는 흐엉강과 민가를 굽어보며 ‘환영받지 못한 산’으로 오도카니 서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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