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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 분단 앞에선…동물적 절규
현대무용 ‘작전구역’ ‘더 라스트 월 비긴즈’ 폭력 · 광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표출…강렬한 전자음 · 개콘 패러디 등 다양한 실험 이채
침묵 속에 괴이한 음악이 흐르고 손가락으로 총을 만든 사람들이 무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서로를 겨누고 다시 어딘가를 지향한다. 고도로 훈련된, 집중된 몸짓 하나하나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프랑스의 안무가 피에르 리갈(Pierre Rigal)이 연출한 무용작품 ‘작전구역’은 인류의 오랜 질문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와 그 해답을 얻으려는 몸짓이다. 류병학 연출의 현대무용 ‘더 라스트 월 비긴즈’ 역시 전쟁이 야기한 분단 속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되묻는다. 문화ㆍ예술이 동시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때 전쟁에서 비롯된 편린을 그린 두 작품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질 법하다.

▶전쟁에 대한 진지한 고찰, 피에르 리갈의 ‘작전구역’=수십개의 분쟁지역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전쟁을 통해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또 많은 것을 창조하고 진화했다. ‘작전구역’은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그 해답을 찾고자 한, 파괴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안무가 피에르 리갈은 상상 속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작품 속 미래 과학자들은 알 수 없는 생명체를 가지고 실험을 수행한다. 실험목표는 ‘인간들은 전쟁을 왜 일으키는가’란 전쟁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 무용수들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상 생명체, 로봇,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실험의 연구 대상이 된다.
 
‘작전구역’의 프랑스 안무가 피에르 리갈. [사진제공=LG아트센터]

무용수들은 총을 들고 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서로 싸워야 하는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존재들은 점차 동물처럼 변해가며 대립과 긴장이 고조된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 도구인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극을 통해 이들의 대립을 멈추게 만들고 다른 생명체로 변화시킨다.

작품의 독특한 면이라면 조명ㆍ음향 등 무대기술자들도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기술자들은 우주복과 같은 번쩍이는 실험복을 입고 시간여행을 돕고 실험 재개와 중단을 조절한다.

피에르 리갈은 “전쟁의 이유라는 1차원적인 질문에 당연히 답을 찾진 못하겠지만 극적인 요소로서 쓰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을 통해 대립이란 요소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극적 요소로 사용할 수 있었고 반대적인 느낌, 전쟁이 가져다주는 상황적인 모순과 대립을 넣어보고 싶어했다. 반대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조화와 폭력성의 모호한 경계를 이용, 작품에 반영했다고 했다.

금속 재질 느낌이 나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과학자들의 의상이나 배경, 인공위성 느낌의 조명, 강렬한 전자음악은 약간 전위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작품에 사용된 가발은 생명체가 인간에서 동물로, 가발을 벗으며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지난 2010년 국립현대무용단과의 워크숍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피에르 리갈은 “한국 무용수들의 테크닉, 에너지에 놀랐고 유연성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워크숍 형태로 20명가량의 배우를 선발하고 7월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최종 선발했다. 선발된 배우들은 총 9명. 무용수들 역시 피에르 리갈의 여유와 자유로운 작업 방식 등에 대해 만족해했다.

초연 전인데도 ‘작전구역’은 오는 11월부터 프랑스 파리와 툴루즈, 스위스 로잔 등 2개국 10개 도시에서 총 28차례 공연을 펼친다. 국내 무용수와 해외 안무가가 함께한 작품으로 국내 단체가 해외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진행한 것은 흔치 않은 일.

LG아트센터와 피에르 리갈의 무용단인 데흐니에르미뉘트컴퍼니(Compagnie Dernire Minute), 스위스의 시어터비디로잔(Theatre Vidy-Lausanne)이 공동으로 제작했고, 국내 공연이 전 세계 초연으로 오는 14~15일 LG아트센터에서 이틀 동안 열린다.
 
‘더 라스트 월 비긴즈’의 한 장면. [사진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전쟁 이후의 평화, 하지만 혼돈은 존재한다. 류병학 연출의 ‘더 라스트 월 비긴즈’=2019년 4월 13일, 통일 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더 라스트 월 비긴즈’는 독일 유학파 출신인 류병학 씨의 첫 연출작. ‘분단국가에서의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작품이다.

자유를 찾아 두만강을 건넌 북녘 처녀 한송이. 남자친구와 함께 목숨을 건 모험을 했지만 남자친구는 국경을 건너다 사살당하고, 다음날 통일의 날이 찾아왔다. 통일한국에 다시 들어왔지만 남북의 장벽은 없어졌어도 사람들 마음속엔 장벽이 남아 있다.

북녘 동포들은 2등국민으로 치부되고, 송이가 자유의 땅이라고 여겼던 남한은 학연ㆍ지연ㆍ혈연으로 뭉친 곳이다. 무용가의 꿈을 꾸는 그녀, 북한의 3부자 세습만큼이나 견고한 한국 사회의 재벌 세습과 종교, 언론 등의 문제를 보며 절망하고 저항한다.

각종 사회문제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미래 한국 사회엔 급기야 현 체제에 반하는 테러리스트까지 등장하고 송이는 테러리스트의 폭탄을 온몸으로 막으며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독일에서 공부하다 직접 통일의 현장을 목격한 류병학 연출은 ‘더 라스트 월 비긴즈’를 통해 명목적으로 평화가 찾아온 대한민국에 진정한 갈등 해소와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고 갈등 해소를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류 연출은 “기존 예술이 난해해 소통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기존 체제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다”며 “전편 ‘더 라스트 월’이 소통의 문제를 다뤘는데 이전부터 통일 문제와 정치사회적 요소를 꼭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품은 송이의 ‘죽음의 춤’ ‘저항의 춤’ ‘절망의 춤’ ‘희생의 춤’ ‘사랑의 춤’을 위주로 구성됐다. 물론 춤이 기반이긴 하지만 한팩 하이브리드 시리즈 ‘더 라스트 월 비긴즈’는 무용의 한계를 복합장르를 통해 보완했다. 주인공 송이 역엔 최승희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부터 춤을 배운 새터민 김성숙 씨가 춤과 연기를 보여주며 동포의 한을 그대로 담았다.

작품 속엔 패러디가 많다. KBS ‘개그콘서트’의 ‘풀하우스’, 영화 ‘킬빌’ ‘매트릭스’ ‘웰컴투동막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장면들을 모방했다.

‘더 라스트 월 비긴즈’에선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ㆍ영상예술ㆍ영화ㆍ사운드아트ㆍ음악이 함께하며 극의 전개를 돕는다. 아트센터 나비가 지난해 ‘더 라스트 월’을 선보였고, 류 연출은 올해 그 속편 격으로 이 작품을 준비하며 다양한 장르의 접목을 시도했다.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은 영상을 통해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통일 전까지의 모습을 다뤘다. 신문 보도와 정선의 ‘금강산전도’로 6분간의 영화 프롤로그를 준비했고, 정석희는 800장의 그림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오지은 등이 담당했다.

실험적인 공연들을 지속해오고 있는 아트센터 나비의 ‘더 라스트 월 비긴즈’는 13~1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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