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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맨얼굴 만나는 그 즐거움
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 세상과 나누던 생전 마지막 글의 큰 울림…나희덕 ‘저 불빛들을…’ 생활 속 작은 점 · 점들의 큰 감동
산문읽기의 즐거움은 작가를 맨 얼굴로 만나는 데 있다. 작가가 만지고 눈이 닿은 곳, 생활의 내음과 사유의 결을 오롯이 느끼면서 가까워지는 은밀함을 느끼게 된다. 쫓김 없이 글과 글 사이를 유영하며 느긋하게 즐기는 산문의 맛은 소설과 달리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다. 생동적이고 유머러스함으로 즐거운 글맛을 선사해준 소설가 박완서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마음산책)과 나희덕 시인이 13년 만에 펴낸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하늘바람별)는 잘 익어 스스로 뚝 떨어진 과일처럼 풍부한 즙과 향으로 가득하다.

나희덕의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는 아픔과 상처, 생활의 고단함속에서 작은 일탈과 거기서 발견한 찬란한 순간을 들려준다. 산문집은 점, 선, 면 3부로 구성돼 있다. 칸딘스키의 ‘점ㆍ선ㆍ면’에서 깨달음을 얻어 삶과 사람, 환경, 생명, 문학에 대한 기억과 사색을 모은 이번 산문집은 시가 잉태하고 탄생한 문학적 토양과 깨달음, 상처와 고난, 축제와 회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덴에서 무등까지’는 그의 유년기 원체험을 형성한 기억이다. 보육원 총무를 지낸 엄마와 염소와 닭들, 100여명 아이들의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는 그의 문학적 토대를 이루는 단단한 암반이다.

시인은 달그락거리는 “그 왕성한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는 것이 내게는 독특한 유토피아 구조를 마련해준다”고 했다.

집단 속에 하나의 점, 그것이 그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20대 여러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떠돌아다닌 것도 어린시절에 뿌리가 닿아 있다.

시인은 누구에게나 있는 황무지 같은 삶에 대해 얘기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채권자에게 쫓기며 응급실에 실려가던 날 그의 눈을 찔러온 연둣빛 벼 포기. 그때 하나의 깨달음이 가슴을 쳤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아픈 것은 그들의 실패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내 사랑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실패는 없다.”
 
지난해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사진 왼쪽)의 미발표 산문을 엮은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과 나희덕(오른쪽) 시인의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가 동시에 나왔다. 작가의 체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산문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진제공=마음산책·하늘바람별]

일상속에서 설움과 뜨거움이 울컥할 때마다 한 편의 시는 태어나고 태어난 자리마다 상처는 딱지가 앉았다. 그의 시가 탄생한 자리가 산문집에는 지문처럼 찍혀 있다.

1박2일 문학행사에서 만난 화사한 한 여인의 울음 앞에서 그 역시 무너지며 깨닫는다. 시인은 곡비(哭婢)라는 말을. “내 시의 팔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우는 자로서의 운명을 그는 받아들인다.

박완서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은 생전에 펴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끝으로 더 이상 작가의 산문집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 터에 덤으로 주어진 선물같다. 작가는 생전에 책으로 엮이지 않은 글을 노트북에 묶어 두었다. 이를 맏딸 호원숙 씨가 찾아내 2000년 이후 기고한 38편만 추렸다. 이 가운데는 기억의 창고 속에 여전히 파랗게 살아있는 어린시절을 비롯해 작가가 되고 싶은 어린이에게 쓴 편지글, 손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 세상을 먼저 뜬 지인에 대한 조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는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야기가 풍부한 집안에 태어난 걸 어떤 부잣집에 태어난 것보다 큰 복으로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38편 가운데 작가의 생전 마지막 글은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려있던 ‘깊은 산속 옹달샘’. 법정스님과의 작은 인연이 담겨있다. 도자기 굽는 지인의 가마터에서 만난 스님이 작은 갈등을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해결하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을 깊은 산속 옹달샘에 비유한다. 혼자만의 사색과 공부의 시간을 원했던 스님이 생전에 번다한 불일암을 떠나 더 깊은 산속 오두막으로 숨어 산 일이 결코 자기만 더럽혀지지 않으려는 행위로 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산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목을 축이고 길을 찾도록 해주고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죽어가는 강의 아슬아슬한 임계점을 지켜주는 생명수로 본다. 작가는 글 맨 끝에 이렇게 썼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인 셈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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