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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부터 21세기까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1975년 경주 안압지(雁鴨池) 준설 작업을 겸한 발굴 조사 도중 특이한 유물 하나가 출토됐다. 17.5㎝ 길이의 이 목제 유물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발기된 남자의 성기를 닮아있었다. 이후 크기와 모양이 다른 남근(男根) 모양의 목재 유물이 2점 더 발견됐다. 이 목재 남근의 표면은 꽤 오래 손때를 탄 듯 반질반질했다. 귀두 부분엔 남자 성기의 보형물을 연상시키는 돌기도 3개나 돋아있었다. 단순한 남근숭배 신앙의 산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유물이었다. 목재 남근이 ‘딜도(남자 성기 모양 자위기구)’가 아니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안압지는 7세기 후반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ㆍ661∼681) 대에 조성됐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목재 남근은 1300여 년 전 신라 여성의 ‘딜도’인 셈이다.



여성용 자위기구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BC. 69 ~ BC. 30)는 침대 곁에 항상 꿀벌을 담은 작은 용기를 비치했다고 전한다. 용기 안에서 날갯짓하며 부딪히는 꿀벌의 격렬한 몸짓은 그대로 용기에 진동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오늘날의 ‘바이브레이터(진동식 자위기구)’와 다른 점은 동력원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BC. 445 ~ BC. 385)의 ‘리시스트라타(Lysistrata)’ 같은 작품에서도 밀레토스(오늘날의 터키지방)산 개가죽을 이용한 ‘딜도’가 유명하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사실은 늘 기록을 앞서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자위기구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위는 오랜 세월동안 터부시돼왔다. 자위를 의미하는 용어 중 하나인 ‘오나니즘(Onanism)’이 대표적인 예다. ‘오나니즘’은 구약성서 창세기 38장 8절에 등장하는 ‘오난’이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오난’은 미망인인 형수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라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그러나 ‘오난’은 자식을 낳지 않기 위해 사정 직전에 성기를 빼내 바닥에 사정을 했고, 이에 신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맞는다. ‘오난’의 행위는 피임의 일종인 ‘질외사정’에 가깝지만, 형수의 성기를 단순한 자위기구로 이용했기 때문에 신의 벌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다. 자위를 의미하는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도 ‘손으로 오염시킨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동사 마스터베어(masturbate)에서 유래한다. 인간의 성욕은 본능이며, 자위 또한 성욕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인식은 불과 한 세기 전만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성적 불만으로부터 오는 여성들의 극심한 정신적 불안을 당대 의학은 ‘히스테리아(hysteria)’라고 부르며 병으로 취급했다. 현대식 바이브레이터 역시 본래 ‘히스테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구로 발명됐다.



성혁명과 여성해방의 목소리가 높았던 1970년대, 자위기구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상징이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화가인 베티 도슨(Betty Dodson)은 여성의 성적 독립성을 쟁취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도슨은 남성과의 섹스 대신 자위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바이브레이터인 히타치 마술봉(Hitachi Magic Wand)의 사용을 강력하게 권했다.



최근 아이팟과 연동되는 바이브레이터 ‘OhMiBod’이 출시됐다. 발라드에선 잔잔하게 하드록에선 강렬하게, 이 기기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다르게 진동하며 여성의 음악 감상(?)을 돕는다. ‘OhMiBod’의 원리와 모양은 신라 시대의 목재남근과 클레오파트라의 꿀벌 용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본능인 성욕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다. 변화된 것은 사회적 인식과 시선뿐이지만 자위기구는 여전히 입에 올리기도 구입하기도 머뭇거려지는 물건이다. 자위기구가 숨겨야 할 물건이나 여성 해방의 상징 대신 ‘생활용품’의 지위를 확보하기까진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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