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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진 “김기덕 감독님이요? 그냥 아저씨에요” (인터뷰)
배우 이정진이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 번째 영화 ‘피에타’를 통해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주로 남성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로 각인됐던 그가 ‘피에타’로 제 2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 하루하루 연명하는 나쁜 남자 강도로 분한 그에게 기존의 로맨틱하거나, 신사적이거나 멋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작 ‘원더풀 라디오’의 까칠한 PD 재혁의 모습도 없다. 그저 잔인한, 모정에 굶주린 또 연민이 느껴지는 초라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피에타’는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특히 ‘친절한 금자씨’(2005)인지라 수상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 이 영화는 공식 상영 전 진행된 프레스 상영에서 ‘피에타’는 현지 취재진들에게 10분 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베니스로 출국 전 만난 그에게 이번 영화제에서 수상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예상은 할 수 없다. 예상한 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극중 강도는 ‘엄마’(조민수 분)를 만나면서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정을 느끼게 되고, 점차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다. 연기하기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다. 이런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 가장 주안을 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것조차 사치였다”고 운을 뗐다.

“촬영 기간 자체가 너무 짧아서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어디에 주안점을 둬서 연기하자는 생각 자체가 사치였죠. 그냥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제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어요. 제 속에서 꺼내기 힘든 에너지까지 다 동원했죠.”

이번 작품에서 그는 또래 여배우가 아닌 오랜 시간 연기 인생을 걸은 조민수와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그에게 부담감은 없었다.

“워낙 연기를 잘하시잖아요. 많은 시너지를 받았냐고요? 글쎄요. 에너지가 많고 잘하는 배우인 건 맞지만 뭘 얻어간다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간에 마찬가지고요. 부담감도 없었어요. 전작 ‘마파도’, ‘해결사’에서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선배님들이랑 호흡을 맞춰서요.(웃음)”

대중들이 생각하는 김기덕 감독은 어둡고, 사회비판적이며 자기만의 색깔이 강하다. 또한 늘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 이정진이 생각하는 김기덕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저도 그동안의 작품을 보고 어두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냥 아저씨에요.(웃음)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분이죠.”

이정진은 김기덕 감독과 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길 원했지만, 촬영 여건 상 그럴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품의 마지막 대본을 받은 것도 촬영 2주 전이었다고 했다.

“감독님과 영화 촬영 전에 술자리는 한 번 가졌어요. 대본도 2주 전에 받아서, 정말 시간이 촉박했죠. 영화를 하기 전에는 많은 얘기를 했지만, 촬영 당시에는 그럴 여유도 시간도 없었어요. 또 촬영일까지 10일이 남은 상태에서 갑자기 3일을 앞당겨 진행돼서요. 총 촬영 스태프도 열 다섯 명이었고요. 말 안해도 어땠는지 아시겠죠?”

이번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이정진은 세계의 내로라 하는 감독들을 만나게 됐다. 그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히치콕을 잇는 스릴러의 거장으로 불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워낙 유명한 감독님들이 많이 오시잖아요. 보게 되는 것도 영광이죠. 그냥 다 좋아요. 하하. 가장 좋아하는 감독님이요? 다 좋은데, 굳이 꼽자면 팔마 감독님이요. 이제 곧 팔순이신데 그 중 40년을 영화로만 보내셨잖아요.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도 찍으셨고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의 흥행 공약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에 그저 관객들의 평가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공약은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저는 이 영화를 믿고 있어요. 현장에서 모니터링도 못했는걸요.(웃음) 해외에서는 좋은 평가가 있었지만, 국내 관객 분들은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할 뿐이에요. 관객들의 취향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잖아요. 음식도 똑같죠. 유명한 맛집이라도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지는 않잖아요.”

이정진은 ‘피에타’의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휴식기를 거친 뒤 그는 차기작을 통해 또 한번 변신에 나선다. 이번에는 재난 영화다.

“차기작 역시 영화를 할 것 같아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요. 전쟁이 주가 된 재난 영화고요.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장르일 수도 있어요. 스케일도 크고,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그리고 브라운관으로도 모습을 비출 것 같고요.”

자신만의 뚜렷한 연기관과 소신을 가지고 있는 배우 이정진. 다정다감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식 없고 거침없는 그의 본래 색깔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새롭게 ‘변신‘이라는 날개를 단 그가 과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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