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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주말이라 병원 못찾아 처방 못받고…머뭇대다 72시간내 복용 놓치고…
사례로 본 사후피임약 한국사회 현실은
헤럴드경제는 사후피임약 의사처방을 제때 받지 못해 피임에 실패한 여성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이를 통해 피임에 실패해 뒤늦게 낙태를 했거나 원치 않았던 출산을 하게 된 몇몇 여성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어떤 이유로든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억에서 지웠던 악몽들을 상기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여성민우회의 도움을 받아 원치 않던 임신으로 고민하다가 낙태한 두 여성의 애달픈 사연을 담는다. 민우회는 낙태여성의 고민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작업 중에 있다. 본지는 또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성폭행 피해로 인해 임신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여성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슬픈 사연도 옮긴다.

▶“남친은 그냥 세포니까 지워도 된다고 했다”=20대 초반의 대학생인 A(여) 씨는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맺고 얼마 뒤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사후피임약도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처방을 받을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지울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낙태 시술밖에 없었다. A 씨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한 남자친구를 언제부턴가 ‘걔’라고 불렀다.

“걔가 수술비를 냈어요. 그리고 자궁벽을 허무는 약을 먹으라 해 먹었고, 두 시간 후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갔어요. 수술을 했고요. 회복실이라는 곳을 갔는데, 온돌 구들장 바닥이 전부였어요.”

A 씨는 “걔는 아이를 지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생명이 아니라) 세포 형성 중에 불과하다는 거였어요.” 그는 그렇게 낙태 수술을 받았다. 남자친구와 좋아서 성관계를 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A 씨. 좀 더 일찍 임신사실을 알고, 사후피임약을 복용했더라면 외과적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그녀는 후회했다.

▶“주말에 병원이 쉬지만 않았더라도”=20대 중반 여대생인 B 씨. 자주 피로감이 몰려오고, 몸이 붓는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B 씨에게 아이 심장소리를 들려줬다. 초음파 사진까지 보게 됐다. B 씨는 혹시나 했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져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있기 수개월 전 금요일 오후 B 씨는 애인과 관계를 맺었다. 배란일을 전후한 성관계가 신경 쓰였던 그는 사후피임약 처방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전 중 병원에 가는 것을 놓쳤다. 토요일 오후 병원은 어두컴컴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병원은 모두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약국도 많지 않았다. 고민하던 B 씨는 월요일 오후가 돼서야 학교가 있는 서울 용산구에서 멀리 떨어진 한 중형병원 내과를 찾았다. 산부인과를 갔다가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피임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임신을 피할 순 없었다. 임신이 가져올 미래가 두려왔던 그는 낙태 수술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다.

▶나이트클럽에서 성폭행을 당한 그녀=나이 불명의 여성 C 씨는 현충일인 지난 6월 6일 서울시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한 남자와 술을 마셨고,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5시13분께 깨어나 보니 자신이 나체의 상태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C 씨는 순간적으로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문제의 남자가 자신의 몸 안에 사정을 했고, 지갑에 있던 현금 20만원까지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휴대폰 메시지에 체크카드 두 번 승인거절 문자 메시지가 들어온 것을 보면 그 남자는 자신의 지갑에 있던 체크카드로 호텔비용까지 내려했던 것 같다. 7일 출근한 C 씨는 전날 사고로 임신이 되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돌본다는 원스톱센터에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별다른 검사도, 피임약도 처방해 주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로 여전히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C 씨는 사후피임약 처방을 받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박병국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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