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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간접광고, 대본까지 뒤흔든다
광고상품-스토리 절묘한 결합…극중 인물 직업까지 좌지우지
시청자 눈치채는 순간 재미 반감…도 넘은 상품노출에 중징계도


“날도 덥지만 어머님께서 이렇게까지 더위를 못 이기시는 건 갱년기 번열증이 더 큰 원인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며) 여성 갱년기 치료제예요.”

전국 시청률 40%대의 국민드라마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의 38회에서 차윤희(김남주 분)의 친정엄마 한만희(김영란)에게 며느리 지영(진경)이 건네는 대사다. 매사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틀어놓은 에어컨을 꺼버리곤, 특유의 일장 ‘훈계’를 한 뒤 가방에서 갱년기 약을 꺼내 탁자에 놓는다. 그때 카메라가 상품을 근접 촬영하며 ‘oooQ’가 화면 가득 들어온다. 

신사의 품격

노골적인 간접광고다. 갱년기를 한참 지났을 것 같은 나이에 뜬금없이 갱년기를 겪는 에피소드가 다뤄졌고, 대사나 화면 연출도 매우 직접적이었다.

요즘 드라마 간접광고가 그야말로 우후죽순 격으로 늘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 지상파방송의 오락과 교양물에 대해 간접광고가 허용된 뒤부터다. 형태도 다양하다. 해당 광고 상품과 ‘스토리’를 엮어, 원래 대본상의 에피소드인지 광고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하다.

▶간접광고에도 레벨이 있다=그런데 드라마 속 광고에도 품격이 있다. 물론 그 격은 광고금액에 따라 결정된다. 인기 드라마 ‘넝굴당’을 예로 보자. 제작사인 로고스필름에 따르면, 이제까지‘넝굴당’에 포함된 간접광고는 갱년기 약 같은 단발성 광고를 포함해 모두 10건이다. 블랙스미스, 떡보의 하루, P.A.T 등은 제작지원과 간접광고를 함께 하고 있다. 방송이 끝난 뒤 크레딧에 협찬사 로고를 보여주는 일명 ‘슈퍼자막’의 광고주가 바로 제작지원사. 여기에 간접광고는 프로그램 안에서 전체 방송시간의 5% 이내, 화면 크기 전체의 4분의 1 내에서 이뤄지며, 건건이 따로 계약한다. 블랙스미스는 제작지원과 함께 브랜드가 노출될 때마다 간접광고료를 별도로 내고 있는 셈이다.

극중 인물의 직업을 광고주에 맞추는 식도 유행이다. 일명 ‘직업군 간접광고’다. 예컨대 ‘넝굴당’의 천재용(이희준 분)은 레스토랑 사장이어야 하며, 갱년기 시스터즈로 불리는 엄순애ㆍ엄보애는 의류매장을 운영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간접광고는 금액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브랜드와 상품만 노출하는 게 1단계, 연기자가 브랜드나 상품을 들고 연기를 하는 게 2단계, 1단계와 2단계가 결합된 게 3단계다. ‘넝굴당’에서 천재용의 큰누나로 깜짝 출연한 김서형이 특정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데, 이처럼 배우가 제품을 들면 2단계다. 2단계는 대개 건당 3500만원에서부터 시작한다. ‘넝굴당’처럼 시청률이 높은 방송일 경우 금액은 오른다.

▶늘어나는‘광고효과 제한’심의 위반=시청자의 뇌리에 은연중에 좋은 상품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간접광고는 더러 시청자의 짜증도 유발한다. 시청자가 광고임을 단박에 알아채면 시청의 재미는 반감된다.

간접광고 증가에 따라 광고효과 제한 심의규정 위반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지상파 간접광고 제재조치(경고ㆍ주의ㆍ시청자 사과)와 권고는 14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9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34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에 육박했다.

심의의 칼이 인기 드라마라 해서 봐주는 건 없다. 얼마 전 종영한 ‘신사의 품격’ 4회에서 도진(장동건)은 타이어 수리점에서 “(차가 떨린다는 말에) 우리 베티 거랑 같은 걸로 바꿔! 저기 있다! 빗길 제동도 끝내줘~”라며 윤(김민종)에게 타이어 교체를 권유한다. 또 6회 찜질방 장면에서 메아리(윤진이)는 다이어트 음료를 마시며 “요즘 스트레스로 폭식했더니 2㎏ 쪘단 말이에요. 살 빼야죠”란 대사를 한다.

이 밖에 MBC ‘더 킹 투하츠’의 왕세자(이승기)는 수시로 던킨도너츠를 먹었다. 두 드라마 모두 방통심의위의 ‘주의’를 받았다. MBC 아침드라마 ‘천사의 선택’은 화장품 회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노골적으로 화장품 신제품을 홍보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한 드라마제작사 관계자는 “광고주들이 드라마 앞 뒤에 붙는 광고보다 광고 효과가 더 큰 드라마 속 간접광고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기획단계에서 엎어지는 사례도 많은 드라마 제작 여건에서 간접광고나 협찬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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