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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김영란 전격사의했는데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

선비정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말은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장면을 더할 나위 없이 잘 설명해준다.

김 위원장은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의 대선출마 선언(5일 예정)을 앞두고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남편이 대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부인인 자신이 공직을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3일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한 김 위원장은 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30여년 가까이 법관으로 활동하면서 차분하고 온화하지만 원칙을 중시하며 강단 있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서울지법 부장판사 시절 ‘민혁당’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피고인과 변호사 접견을 거부한데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대표적 일화다. 김 위원장은 사법영역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와 피고인 권리보호 진전에 적지 않은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40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김 위원장의 이러한 행보에 뒤따른 성취 가운데 하나였다.

김 위원장의 원칙을 강조하는 성격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은 김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권익위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김영란법은 공무원이 대가성 없는 금품을 수수하더라도 형사처벌받도록 하는 등 이전에 비해 한층 강화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다른 부처와 견해 차이가 빚어지는가하면 국회에서 부정적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김 위원장이 강하게 밀어붙인 끝에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김 위원장의 사의를 아쉬워하고 있다. 다만 아름다운 퇴장이긴 하되 깔끔한 마무리는 아닌 듯싶다. 당장 전임이었던 이재오 의원이 물러난 이후 6개월이나 공석이었던 권익위원장의 장기 공백 반복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그토록 공들인 김영란법도 진로를 잃고 표류할 공산이 높다. 또 사의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권익위 핵심관계자들에게조차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는 조금은 의아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강 변호사의 대선출마와 맞물려 김 위원장이 사의표명 시기나 방법을 놓고 정치적 계산을 한 것 아니냐는 억측마저 제기되는 형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김영란법 등 현안도 많은데 당혹스럽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신대원기자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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