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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지하경제 ‘온상’ 은 옛말…부도위기 업체 ‘최후의 자금줄’ 로 명맥
명동 사채시장 어제와 오늘
정·관계 자금부터 서민급전까지…
검은 돈 돌고돌던 사채시장 중심가
IMF·금융위기 겪으며 급격히 위축

가계수표·PP카드할인등 끊겼지만
한계 기업들 아직도 간간히 발길
금융회사엔 실시간 정보수집장소로



“료가에(환전)? 니마엔(2만엔)? 아리가토(고마워요).”

서울 명동 일대에서 25년간 사업을 해오다 3년 전부터 구두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9) 씨. 구두를 닦으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환전을 해주며 부수입을 올린다.

좁은 구두방 선반에 놓인 컴퓨터 화면은 주가 및 환율 흐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다. “대량으로 환전을 취급하는 곳은 (1000엔당) 200~300원을 남기면서 장사를 해. 나는 구두닦기가 주업이니까 환전은 조금씩 하는 거지.”

“가계수표 할인은 안해요?” 김 씨에게 조용히 물었다. “요즘 가계수표 ‘와리캉’(어음ㆍ수표 할인)하는 데가 어딨어? 어쩌다 (기업)어음 와리캉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가계수표든 어음이든 쉽지 않지. 큰 일 나.”
명동은 한때 대한민국 지하경제의 메카였다. 금융실명제와 외환위기(IMF),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명동 사채시장은 급격히 쇠퇴해 이젠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가 됐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한때 대한민국 지하경제의 메카였던 명동. 정ㆍ관계 인사의 정치자금에서 일반 서민의 급전까지 검은돈이 돌고 돈 곳이 명동이었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사건’이라는 오명을 남긴 장영자ㆍ이철희 어음사기사건도 명동 사채시장이 배경이었다. 금융실명제와 외환위기(IMF),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명동 사채시장은 급격히 쇠퇴했다. 사금융시장 규모는 통계 낼 수 없지만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100조원 정도 되는 셈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난무했던 가계수표 및 선불형 상품권인 PP카드 할인 거래는 끊긴 지 오래다. 건설업체 위주로 기업어음 할인만 취급하는 기업형 사채업체만 찾아볼 수 있다. 기업 재무정보를 제공하는 중앙인터빌 강천규 부장은 “10여년 전만 해도 명동에서 5조~6조원이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전자어음이 활성화되면서 명동 사금융시장에는 부실한 기업체 (종이)어음만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어음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전자어음의 발행 및 유통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09년 11월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주식회사의 약소어음 발행 시 전자어음 이용을 의무화했다. 비슷한 시기 코스닥시장이 발달하면서 사채중개업자와 전주(錢主)들이 코스닥업체가 많은 강남으로 몰리면서 명동 사채시장은 유명무실해졌다.

그나마 명동성당 인근 로얄호텔을 중심으로 간간히 사채업자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명동 A 담배 가게 주인은 “허름한 차림에 손가방을 든 노인들이 로얄호텔 커피숍에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이 바로 전주”라고 귀띔했다.

기업들이 명동 사채시장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금줄이 막히면 바로 부도 처리된다. 은행, 증권사는 물론 정부기관에서도 사람들이 나와 사채시장 정보를 캐고 다니는 이유다. 한 사채중개업자는 “건설업체들이 구조조정 대상인 C, D등급을 피하려고 사채시장을 전전긍긍한다”면서 “금융회사들은 거래하는 기업체의 유동성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기 위해 명동에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사채업도 불법이지만 이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사람도 있다. 가령 사업장 인허가를 위한 ‘예금잔고증명’ 발급을 빌미로 하루짜리 급전을 빌리고 잔고증명 후 분실 신고를 내고 돈을 떼가는 식이다. 강천규 부장은 “대출사기처럼 돈을 빌려준다고 해놓고 수수료만 챙기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주의 돈을 들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다”면서 “명동에서는 20~30년간 서로 돈 거래한 사이가 아니면 함부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최진성 기자>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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