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은 작년 서울 명동 한복판에 미국 뉴욕 5번가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매장을 오픈하면서 “자본ㆍ사람ㆍ정보가 모이는 명동을 거점으로 인도ㆍ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명동을 미래 아시아 패션시장을 이끌 중심지로 본 것이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방문했을 만큼 명동은 세계 속의 ‘패션 중심지’로 뻗어가고 있다. 각종 조사에서 외국인 선호 1위 관광지로 꼽히는 명동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6만~8만명,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은 전체 20%인 1만2000명에 육박한다. 그 선두에는 SPA(제조ㆍ유통 일괄형) 브랜드와 편집숍이 있다.
1950~60년대부터 명동은 패션과 유행의 발상지였다. 한국전쟁 직후 국제양장사ㆍ송옥양장점ㆍ스왕미용실 등 수십개 양장점과 미용실이 생겨나면서 유한층 여성의 사교와 놀이공간이었다.
사보이호텔 후문을 중심으로 고급 양복점도 즐비했다. 잉글랜드양복점ㆍ이용화양복점ㆍ컨티낸탈양복점이 유행을 선도했다. 당시 옷좀 입는다는 신사는 골프웨어도 맞춰 입었는데, ‘몽블랑’은 지금의 블랙앤화이트나 먼싱웨어 같은 고급 맞춤 브랜드였다. 또 소공지하상가에는 LG 구씨 일가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와이셔츠 맞춤 전문점 ‘GQ’가 아직도 건재해 있다.
양화점 중에서는 잉글랜드구두점을 알아줬다. ‘R.SS잉글랜드’라는 브랜드로 양복점과의 차별화를 꾀했는데, R.SS의 의미는 가게 주인이었던 나성실 사장의 이니셜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 제일 아꼈던 구두로도 유명세를 탔다. 정작 정 명예회장은 이 구두점에서 딱 한 점만 사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워낙 자린고비로 소문난 정 회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뒷굽과 앞굽을 갈고, 가죽을 덧대는 수선은 물론 뒷굽에 징까지 박아 오래동안 아껴 신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명동산 한국 명품은 1990년대로 들어가면서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한동안 강남에 패션 메카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패션 명동’이 옛 명성을 되찾은 건 한류 열풍 덕이다. 지금 명동은 유니클로ㆍ자라ㆍ망고ㆍH&M 등 대형 SPA 브랜드의 천국이다. 이랜드ㆍ제일모직ㆍLG패션 등 국내 주요 패션 기업도 앞다퉈 명동에 대형 플래그십스토어를 열며 글로벌 패스트 패션 경쟁에 뛰어들었다.
SPA 브랜드에 이어 신사동 가로수길의 특색인 편집숍까지 몰려들면서 패션 명동의 재건에 가세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동안 한물 간 동네로 추락했던 명동이 밀라노, 파리ㆍ런던ㆍ뉴욕ㆍ도쿄에 이어 세계적 패션무대로 주목받을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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