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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욕탕 열쇠만도 못한(?) 전자발찌…
‘전자발찌’ 차고도 주부 성폭행하려다 결국 살인까지… “완전 무용지물이었다” 유족들 절규속 실효성 뜨거운 감자로
현재 1025명 착용중
성범죄 재범률 1%대 급감
“소급적용 등 더 강화” 목소리

출소해도 ‘창살없는 감옥’ 신세
일상복귀 막는 감시와 처벌
더 강한 범죄 유발 우려 여론도


“전자발찌는 발목에 찬 목욕탕 열쇠고리에 불과했습니다.” 박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그의 아내는 지난 20일 오전 서울 광진구의 자택에서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서모(42) 씨에게 저항하다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서 씨가 전자발찌를 찬 전과 11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자발찌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한 쪽에서는 문제점을 보완해 착용 대상을 소급 적용하고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전자발찌로 모든 성범죄에 대응할 수 없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전자발찌를 둘러싼 논란은 낯선 것이 아니다. 2008년 9월 도입된 전자발찌는 도입 이전부터 계속해서 논란이 돼 왔다. 이중처벌의 문제에 대한 지적부터 전과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전자발찌제도 도입은 번번이 가로막혔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는 갈수록 범죄 양상이 흉악해진다는 공고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2007년 말 경기도 안양에서 두 어린이가 성폭행당한 뒤 무참히 살해된 사건으로 들끓었던 여론에 힘입어 도입에 성공했다.
 
성범죄가 확대되고 흉악해지면서 전자발찌도 기술적으로 진화해왔지만, 인면수심의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번 물꼬가 트인 이후로 법무부는 논란이 일 때마다 전자발찌제도를 더욱 강화ㆍ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범죄 전과자의 추가 범행이 잇따르자 2010년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살인을 하거나 미성년자를 유괴한 이 역시 새롭게 대상에 추가됐다.

2010년 개정된 전자발찌법은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성범죄를 2회 이상 범해 상습성이 인정된 때 ▷전자발찌를 찼던 적이 있는 사람이 또 성범죄를 저지른 때 ▷성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10년도 못 가서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때 등 4가지 외에도 ▷미성년자 대상 유괴범죄를 저지른 사람 ▷살인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전자발찌 부착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논란을 계기로 법무부는 전자발찌 대상을 또 한 차례 확대해 재범률이 높고 성폭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강도죄를 전자발찌 대상범죄로 추가하고,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는 1회 범행만으로도 전자발찌 부착이 가능하도록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다음달 발의할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전자발찌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지만 제도 도입의 효과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만큼, 미흡한 점을 보완ㆍ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전자발찌의 착용 효과는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편이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착용자의 재범률은 크게 감소했다. 현재까지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는 2108명, 착용기간이 지난 사람을 빼면 23일 현재 1025명이 발찌를 차고 있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사람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2011년까지 19명에 불과하다. 성범죄 재범률이 70%에 다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과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자발찌 착용 확대 논의는 지난 2007년 12월 정성현이 경기 안양에서 혜진ㆍ예슬양을 성폭행 하려다 실패하자 이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성범죄 해결의 ‘만능열쇠’처럼 생각해 제도 강화 일변도로 나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꺼림칙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자발찌로 제재할 수 있는 범죄의 대상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장하경주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일상속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대부분은 유영철ㆍ조두순과 같이 충격적인 범죄가 아니다. 학교ㆍ직장 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까지 전자발찌를 차게 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의식 변화와 같은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자발찌는 아버지와 같은 친족에 의한 성폭행 등에도 적용되지만, 실제 피해자를 위한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범죄자라는 뚜렷한 ‘주홍글씨’ 때문에 교정을 통한 원만한 사회복귀를 가로막는 등 전자발찌 자체가 가진 부작용도 지적된다. 전자발찌 착용자에게는 출소 후에도 대인관계 단절, 취업의 어려움, 활동반경의 제약 등 감옥보다 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 전자발찌 착용자 중 다수는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대인기피 증세를 보인 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에 논란을 촉발시킨 서 씨 역시 전자발찌를 찬 이후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와 형제 등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는 친구 하나 없이 월세방에서 컴퓨터를 하며 외롭게 시간을 보냈다. 범행 당일 새벽에도 그는 홀로 술을 곁들이며 음란물을 봤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달았다.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준 사회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는 최근 연달아 터진 묻지마 범죄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만 강화한 채 이들의 삶을 방치할 경우 예기치 못한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전자발찌 착용 대상 범죄자에 대해 법원이 온정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재만큼이나 교화도 중요한 만큼 사회 적응을 돕는 시스템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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