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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사람냄새 나는 B급 아티스트, 기름진 현실에 어퍼컷을 날리다
예술 속 B급 문화 어떤 게 있나
‘돈 되는’ 주류미술 텃세 속
블랙유머로 현실 비틀고 뒤집어

키치 아트 선봉 최정화 작가
소쿠리 설치작업으로 인기

변방의 화가는 외면받는 세태
주재환 ‘똥값’으로 통렬한 비판

학연·지연에 막힌 제도권 탈피
해외 미술계서 먼저 인정 받기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B급 미술은 그 세력이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다. 대중음악, 만화, 영화 등에 비해 파급력은 약한 편이다. 그 이유는 ‘돈이 되는’ 주류미술이 워낙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B급 아트는 일군의 작가들이 각개전파식으로 저마다 묵묵히 작업하며 명맥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B급 아티스트는 온갖 궂은 일을 전전하며 숙성시킨 특유의 상상력을 무기로, 기름진 우리 사회에 한방 먹이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일종의 블랙유머인 셈이다.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 수백개로 샹들리에를 만든 최정화의 공간 설치작업‘. 키치 아트’로 출발한 최정화는 세계 비엔날레와 미술관이 앞다퉈 모시고 싶어하는 작가가 됐다.

‘사람 냄새 나는 미술’을 지향하는 B급 작가들은 잡초처럼 엄혹한 현실에 대해 악다구니를 쓰기보다 엉뚱한 풍자와 패러디를 통해 몽상가적인 작품을 발표하곤 한다. 언어적 유희, 희화화된 비판도 즐겨 시도된다.

주재환, 최석운, 안창홍 씨 등 몇몇이 바로 이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반면에 저급한 싸구려 소재로 우리 사회 현실을 표현한 키치 아트로 출발했던 작가 중에는 주류미술계로 진입해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예도 있다. 값싼 플라스틱 소쿠리로 설치작업을 하며 ‘키치 아트’의 선봉에 섰던 최정화 씨가 좋은 예다.

B급 미술가 중에는 주재환 씨의 활약이 가장 주목된다. 주 씨는 영국이 낳은 스타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이 2008년 9월 런던 경매에서 무려 2000억원 가까이나 팔리면서 피카소의 옛 기록을 경신하자 이를 빗대 ‘똥값’이란 작품을 제작했다. 해당 기사가 실린 신문을 스캔한 뒤, 한가운데를 홀랑 태워버린 자신의 소품 회화에 이 신문을 붙여버린 것. 대형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집어넣은 수조작품 등을 선보이는 허스트가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며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데 비해 이 시대 변방의 화가들의 작품값은 똥값이나 다름없다는 현실을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한 것. 
B급 미술 진영의 대표주자인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그림으로, 오줌 줄기가 분수처럼 하강한다.

주재환은 또 자신의 그림을 28개의 조각으로 자른 뒤 비닐봉지에 넣어 캔버스에 부착해 ‘진실 06’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그림을 불태우거나 자르는 것은 보통 배짱으론 불가능한 일. 그러나 B급 미술을 표방하는 작가들은 이 같은 테러(?)를 종종 감행한다.

B급 아티스트들은 한국사회의 양극화, 소비지상주의 속 도시인의 이중성, 날로 비뚤어진 현대인의 성적(性的) 욕망은 물론, 넓게는 전지구적 환경문제, 상위 1%가 99%의 부를 쥐고 있는 왜곡된 경제구조, 9ㆍ11사태 등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들은 비닐, 폐조각, 깡통 같은 재활용품으로 이들 무거운 주제를 비틀고 까발린다.

진보 진영의 젊은 평론가들은 이들의 작업을 ‘한국적 개념미술’로 규정하곤 한다. 등 따습고 배 부른 작가들의 작업에선 찾아보기 힘든 예리한 비판적 개념이 돋보인다는 것. 하지만 일각에선 푸석푸석한 재활용 매체 등을 활용하는 작업에 대해 “개념미술이라고 보기엔 너무 조잡하고 빈약하다”는 지적도 따라다닌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B급 작가들은 개념미술 같은 정의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화단의 주류가 아닌 변방의 작가로서 자기 작업을 할 뿐이라는 태도를 견지한다. 
거침없는 풍자로 유명한 안창홍의 회화‘화가의 똥’.

학연, 지연 등이 견고한 벽을 형성 중인 국내 제도권 화단과는 달리, B급 작가 또는 키치 미술을 하는 작가들은 아주 드물게 베니스 비엔날레 또는 외국의 유명 미술관 같은 해외 미술계에 소개되기도 한다. 팍팍한 삶에서 우러나온 애환과 페이소스, 그리고 의뭉스런 비판정신이 배어 있는 B급 아티스트들의 개념적 매체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냉소를 머금게 한다. 동시에 일종의 화두처럼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블랙유머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내는 것.

B급 진영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주재환 씨의 ‘몬드리안 호텔’이 좋은 예다. 몬드리안의 세련된 기하학적 사각구조에, 한국식 러브호텔의 요지경 세계를 맞춤하게 집어넣어 우리의 현실을 표현한 이 작품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어처구니없는 사회현실에 똥침을 놓는 이들의 개념적 패러디는 기발하면서도 진정성이 담겨 있어 대중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최석운의 ‘돼지부인’. 빼빼 마른 체형만 선호되는 세태를 풍자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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