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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그녀를 웃게하는 미세한 떨림…저주받은 ‘그것’에 축복을!
‘그것’
정신병·히스테리 취급받던
여성의 성적 욕망 ‘그것’

‘바이브레이터’탄생 실화로
여성해방 유쾌하게 그려


“애들 넷 잘 낳고 살아왔어요. 남편도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한밤중에 날 건드리면 손도끼로 그 멍청한 ‘대갈통’을 확 날려 버리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각’이 나요. 죽을 것 같은 ‘굶주림’처럼 느껴져요.”

또 다른 여인은 무조건 운다. “흑, 흑, 흑.”

19세기 영국 상류층 귀부인들의 이야기다. 의사들은 많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까닭 없는 우울증세와 발작적인 분노, 폭력적인 공격 성향을 일러 ‘히스테리아(히스테리)’라고 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의 4분의 1에서 절반이 히스테리아를 앓았다고 한다.

치료는 어떻게 했을까.

예로부터 냉온욕, 물대포, 최면 등이 시도됐고, 때로는 격렬한 승마나 흔들의자, 그네타기 등도 권장됐으나, 16세기 이후 훨씬 더 직접적이며 효과가 탁월한 치료법이 행해졌다. 무슨 처방일까. 영화 ‘히스테리아’에서 선배의사가 다리를 벌리고 누운 여 환자를 앞에 두고 손을 들이밀며 시범을 보인다. 

영국 영화‘ 히스테리아’는 야한‘ 그놈’ 바이브레이터의 탄생기를 착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진은 영화 속 장면.

“먼저 의사의 손에 머스크오일과 백합오일을 섞어서 골고루 발라주고, 검지에 가볍게 힘을 준 후 천천히 원을 그리는 겁니다. 손에 힘을 빼지 말고 자연스럽게 계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같으면 여성들을 고객으로 하는 ‘매춘 변태업’으로 처벌을 받았겠지만 19세기 유럽에선 정상적인 ‘진료법’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의사가 직접 손으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자극하거나 ‘마사지’해서 히스테리아를 분출ㆍ해소시키는 것이었다. 치료시간은 매회당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 효과가 매우 좋았지만 문제는 한 번으로는 완치되지 않아 환자가 정기적인 통원을 해야 했다는 것, 그때마다 의사들의 손이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전동장치인 성기구, 이른바 바이브레이터다. 거짓말 같다고? 영화 ‘히스테리아’는 첫 머리에 두 번의 자막을 넣었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했습니다, 진짜로!”

23일 개봉한 타니아 웩슬러 감독의 영국 영화 ‘히스테리아’는 야한 ‘그놈’의 탄생기를 착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위선과 순결주의, 낡은 폐습과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공존했던 시기, 봉건주의와 민주주의가 치열하게 대립했던 시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흥미진진한 풍속도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인술과 과학적인 의료를 실천하려 했지만 상류층 귀부인들의 치마폭에 매달려야 했던 한 청년 의사가 여권신장과 빈민구호에 앞장섰던 신여성을 만나 꿈과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이 ‘바이브레이터’의 탄생기 속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기구를 발명한 실존인물인 의사 모티모 그렌빌이 주인공이다. ‘허리 하학’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품격을 잃지 않은 드라마다.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의학과 철학, 심리학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던 정신분석학의 ‘원조’ 프로이트는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의 에너지를 가리켜 ‘이드’, 즉 ‘그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단어를 붙였다. 이를 참고한다면 부르기 민망한 신체의 어떤 부위이든, 누구나 갖고 있지만 쉽게 내보이기 어려운 욕망이든 ‘그것’이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낱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탁월한 작명이다. ‘그것’ 혹은 ‘그것’을 둘러싼 역사는 갈등과 투쟁, 대립의 역사였다. 모계 사회 이후 남성이 지배하게 된 이래 특히 여성의 ‘그것’은 끊임없이 침묵과 미신, 편견, 침묵, 왜곡, 억압, 질병, 정신병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1953년 발표된 킨제이 보고서의 원제는 ‘여성의 성적 행동’이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치료와 처벌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조건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킨제이는 통계와 실증주의의 밝은 햇살 아래 ‘그것’을 둘러싼 미신과 오해를 걷어냈다.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그들과 삼각관계를 이루었던 여성 심리학자 사비나 슈필라인의 사랑과 욕망을 그들의 창조물인 ‘정신분석학’의 맥락 속으로 밀어넣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 연구의 혁명을 이뤄냈던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의 삶을 그린 빌 콘돈의 ‘킨제이 보고서’도 ‘그것’의 역사에 관한 훌륭한 참고서다. 물론, ‘그것’이라고 에두르지 않고 노골적이며 적나라하게 금기를 발설한 이브 엔슬러의 저서이자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빼놓을 순 없다.

결국 이 모든 예술형식이 독백이 아닌 합창으로 말하는 것은 딱 한 마디다.

“저주받은 ‘그것’에 축복을!”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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