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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들 “왜 우리만…”
‘경제민주화’ 돌풍에 뭇매
“손보지만 말고 손도 좀 잡아달라” 기업들 이유있는 항변



‘잔혹사(殘酷史)’. 사전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잔혹한 역사, 혹은 잔혹했던 때를 의미한다. 단어에선 뭔가 잔인함이 풍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잔혹사를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한때 스크린을 도배했던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때문일 게다. 폭력은 난무했지만, 고등학생의 성장기가 배어 있어 다소 낭만이 흐르는 영화였다.

하지만 2012년의 잔혹사엔 낭만이 없다. 섬뜩한 몰아붙임과 ‘주홍글씨’ 낙인을 찍어 단두대 위로 올리는 듯한 엄혹함만이 있을 뿐이다. 잔혹사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바로 ‘재벌’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린 채 말이다. 가히 ‘2012 재벌 잔혹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재벌은 코너에 몰려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들의 위협에 초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국내 정가에선 총수 집행유예 금지(1호), 일감 몰아주기 규제(2호), 순환출자 규제(3호)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대선 정국을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로선 기업, 나아가 총수들을 향한 전방위 압박엔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시장의 독점과 양극화, 불공정거래와 시대정신의 역행을 들어 재벌을 ‘범죄시’하는 흐름도 엿보인다.

물론 재벌의 잔혹사는 올해의 얘기만은 아니다. 개발시대엔 정권과 유착했다는 비판대에 서며 개혁 대상이 되기도 했고, 한때 정치자금법에 걸린 총수들이 줄줄이 소환을 당하며 오너 수난의 역사로 점철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재벌은 더 큰 봉변의 위기에 놓여 있다. 옛날에는 특정 기업, 특정 재벌이 타깃이었지만 이 시대는 재계 전체에 칼날이 겨눠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스스로 수난을 초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선 개발시대의 특혜로 성장한 측면이 있기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새 시대, 새 소통으로 탈바꿈해야 했는데, 여전히 대기업이 구태를 벗지 못해 위기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베일에 가린 오너와 3세들의 경영은 상생시대에 반한다는 날선 비판도 나온다.

맞는 얘기일지 모른다. 시대에 맞게 변하지 못하는 것은 죄(罪)다. 그렇다고 해도 과거 재벌의 공(功)은 깡그리 무시하고 과(過)만을 부각해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국경제 특유의 재벌문화 성과는 인정하되, 폐해는 단절하도록 유도하는 슬기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존의 지혜, 상생의 지혜는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으로는 절대 얻어질 수 없다.

분명 재벌은 현재의 모습과 달라져야 한다. 상생과 조화를 경영철학에 재무장하고,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재음미하고, 일자리 창출과 투자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현재와 같은 강요된 경제민주화 바람으로는 공존의 지혜가 공허한 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12 재벌 잔혹사’는 과연 어떤 그림으로까지 펼쳐질까.

<김영상 기자>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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