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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모가 아이 젖을 물리고 편히 볼 수 있는 방송 해달라”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어록 남긴 송재익씨, 런던올림픽 후배 캐스터들에 바람은…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반드시 참석하고
현지 재래시장·박물관 등 꼭 들러야
현지인 삶 묻어나는 살아있는 중계 가능



“야구 중계는 가계부와 비슷하죠. 콩나물은 얼마라고 적듯 기록 중계거든요. 그런가 하면 축구는 일기장이에요. 중계자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고, 복잡하고 깊이 있죠. 복싱은 단편소설이에요. 10대 때리고도 1대 맞고 가는 수가 있거든. 정신력이 중요하죠.”

송재익(70) 전 SBS 스포츠캐스터의 입심은 여전했다.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왕성하게 활동할 당시보다 좀 말라보였다. 얼마 전 당뇨 증세가 있어 하루 2.5끼로 소식(小食)하면서, 경남 통영에서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했다. 신문선 전 해설위원과 콤비를 이뤄, 절묘한 비유와 화끈한 감성 중계로 인기를 끌었던 그 목소리만은 여전하다.

요즘 축구 중계는 전문적이고 분석적인 스타일로 주류가 바뀌었지만, 1990년대엔 송 전 캐스터 같은 생활 밀착형이 더 인기였다. 스포츠에 관심없던 아줌마, 할머니까지 온 국민이 축구에 열광케 한 데는 그의 구수한 중계 덕도 크다. 송 전 캐스터는 자신의 표현대로 “산모가 아이 젖을 물리고 편히 볼 수 있는 방송, 할머니가 뜨게 코를 흐트러지지 않고 뜨개질을 하면서 볼 수 있는 방송”, 즉 시청자가 편하게 보는 방송을 지향했다.

송 전 캐스터는 자신의 어록과 관련한 일화를 새록새록 다 떠올렸다. 그는 역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전을 40년 스포츠 중계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유명한 “드디어 후지산이 무너집니다.”(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일본전)의 한 마디가 통쾌했던 경기다. “도쿄 국립경기장에 6만명 정도가 파란색 유니폼으로 난리를 칠 때인데, 이민성이 역전골을 넣으니까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죠. 순간 내 느낌이 월드컵을 가느냐 마느냐 머릿속으로 빨리 계산하면서,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은 거죠. 일본의 자존심인 천황은 차마 건드릴 순 없고. 그래서 후지산을 얘기한거죠.”

스포츠 중계의 변천은 광고와 밀접하다. 1970년대 권투, 레슬링에서 1990년대 이후 축구까지 송재익 전 캐스터의 전공 분야도 국민 스포츠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 송 캐스터는 그러나 1970년 MBC에 입사해 처음 맡았던 권투에 애정이 각별했다. 계체량 통과를 위해 자기 침도 아끼고, 배고픔을 견디며 맞는 고통의 경기는 단순한 삶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진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이후 일본의 도쿄방송(TBS)이 한국 아나운서와 일본 아나운서 장외 대결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송 전 캐스터를 밀착 취재하기도 했다.

중계를 하면서 목이 메었던 순간도 털어놨다. 딱 두 번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당시 서독) 전차군단이 프랑스를 누르고 주장 마테우스가 우승컵을 치켜드는 순간, “‘독일 병정이 세계축구를 평정하고 고국에 돌아가면 나라가 통일이 되어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는데, 신문선 위원이 ‘왜 날 울리세요’라고 했었지.” 그해 10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두 번째 순간은 전남 광주에 열린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과 승부차기. 홍명보가 골키퍼와 11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뒤로 물러설 때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때 송 전 캐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 두 손을 치켜드십시오. 맞잡으십시오. 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에게 빌고, 종교가 없으신 분은 조상님에게 빕시다.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

어휘를 선택할 땐 신중해야 한다. 특정 종교가 아닌 신, 조상, 산신령을 드는 이유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말리전에서 “멕시코와 그리스는 장기를 두고 한국과 말리는 바둑을 두는 것”이라고 말하자, 장기협회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복싱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상대편의 귀를 물어 뜯을 때, 방송사가 광고를 위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틀자, 그는 “어린이나 학생들이 있다면 공부방으로 보내십시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라고 안내했다.

그는 유독 농촌을 연상시키는 비유를 많이 들었다. “단두대에서 원두막으로”, “고추밭에 벗어둔 검정 고무신처럼 있긴 있는데 안 보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처럼” “모내기철의 논 주인이 모다발을 던지듯 하는 패스” 등이다. 그러나 그는 서울 토박이다. 한 번은 시인을 꿈꾸는 지인의 아내가 찾아와 그런 표현을 어떻게 떠올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극적인 멘트를 몇 번 했는데, 한 번 썼던 말은 쓰기 싫어해요. 모두 준비 안 된 애드리브죠. 10초 안에 떠올려야 해요. 음식도 따뜻해야 맛있지, 식으면 맛없는 거처럼.”

이번 런던 올림픽으로 떠난 후배들에게 그는 생활형 중계를 준비할 것을 기대했다. 송 전 캐스터는 해외 현지에선 반드시 재래시장, 박물관, 동물원을 꼭 들르곤 했단다. 그래야 현지인의 삶이 묻어나는 쉬운 중계가 가능해진다. 또 올림픽 같은 종합대회에선 반드시 개막식 리허설을 참석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선 리허설 도중 성화 봉송을 위해 경기장의 불이 모두 꺼졌다. 진짜 개막식을 치를 때 불이 꺼지자 타 방송사의 중계석은 조용했지만, 미리 휴대용 전등을 준비해 간 그는 출전국가와 선수 명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긴장감 때문에 캐스터의 수명은 짧을 것이라고 농담 섞어 말한 그는 “축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할 땐 중계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들떠보였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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