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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버킹엄팰리스, 모순과 역설을 배태한 상상력의 ‘자궁’
영국
산업화·민주주의 기틀다진 빅토리아시대
기독교 금욕주의 이면엔 성적문란 팽배했던 때

탄광폐쇄 등 대처의 과감한 경제개혁
그 뒤엔 삶의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 비명이

다이애나의 비극과 미들턴의 로맨스…
이중적 시대정신이 숨쉬는 그 곳


영국은 셰익스피어의 나라이며, 비틀스의 조국이고, 007 제임스 본드의 출신지다. 축구가 태어난 프리미어 리그의 나라이며,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원한 국가이면서도 입헌군주정을 유지해 왕족과 귀족이 주는 낭만적 상상력의 산실이 돼온 곳이다. ‘대처리즘’으로 한 시대의 세계 경제를 이끌었으며, 다이애나 비와 케이트 미들턴으로 상징되는 세기의 비극과 로맨스를 만들어냈던 곳.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영화감독 대니 보일부터 시작하자.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총감독이다. 그는 1950년 프리미어 리그의 슈퍼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연고지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마약에 빠진 젊은이들을 통해 현대 영국 사회의 이면을 그려낸 ‘트레인스포팅’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음향상, 주제가상 등 8관왕에 오르며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 된다.

대니 보일 감독의 초창기 수작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의 주연이자 스코틀랜드 출신 이언 맥그리거는 영국이 낳은 톱스타 배우다.

이언 맥그리거의 작품 중 ‘브레스트 오프’는 대처 재임기 실직한 탄광 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 이야기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1980년대 철강회사의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영국 국립석탄국 총재를 맡아 악명 높은 대량 실직 사태를 가져온 이가 바로 이언 맥그리거와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이다. 대처리즘 시대의 탄광 폐쇄 정책으로 삶의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영국 영화가 즐겨 그린 소재였다.

‘브레스트 오프’뿐 아니라 밥줄 잃고 스트립쇼에 나선 노동자들을 그린 ‘풀 몬티’,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갱에 들어가는 광부 집안의 소년이 발레리노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빌리 엘리어트’ 등이 대표적이다. 

위쪽부터 조지 6세 이야기를 담은‘ 킹스 스피치’, 엘리자베스 2세를 주인공으로 한 헬렌 미렌 주연의‘ 더 퀸’, 대니 보일 감독의 초창기 수작‘ 트레인스포팅’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국립 로열 발레 아카데미에 들어간 후 성인이 돼 선 무대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다. 매튜 본 역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무용가로 특히 흑조가 아름다운 날갯짓을 보여주는 ‘백조의 호수’가 유명하다. 최근 공연 실황이 3D영화로도 제작됐다.

다시 이언 맥그리거로 돌아가면 그는 길드홀음악연기학교 출신으로 재학 당시 룸메이트가 대니얼 크레이그였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첩보영화 시리즈 007의 최근작 주연배우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선 모두에 상영되는 단편영화의 주인공으로 역시 제임스 본드로 분해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촬영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말을 더듬었던 아버지 조지 6세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던 영국의 40번째 군주이자 8번째 여왕이다. 헬렌 미렌 주연의 ‘더 퀸’은 엘리자베스 2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말더듬증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당시 영국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던 조지 6세의 이야기는 걸출한 또 한 명의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타이틀롤을 맡은 ‘킹스 스피치’에 담겼다. 영국 왕의 계보를 보면 조지 6세는 형인 에드워드 8세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에드워드 8세는 조지 5세의 장남이었고, 조지 5세는 에드워드 7세의 차남이었으며,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이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 근현대사상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시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를 만난다.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 즉위해 1901년 서거 때까지 왕위를 지켰다. 영국 왕가에서 재위 60년을 맞은 왕으로는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뿐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화를 이루면서 대외적으로는 최강의 해군력을 구축하며 넓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의 위용을 과시했고 여성, 평민들에게 선거권을 확대하며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들어간 시기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와 금욕주의 이면에 극심한 아동 학대, 노동 착취, 성적 문란이 팽배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 영국의 소설가로는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걸리버여행기’)나 C. 브론테( ‘제인 에어’), E. 브론테( ‘폭풍의 언덕’) 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은 수차례에 걸쳐 영화화됐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출간되고, 독일인 카를 마르크스가 런던정치경제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영국 공장의 음울한 기계소리를 들으며 ‘자본론’을 쓸 때도 바로 빅토리아 시대다.

오늘의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정치와 예술, 지배와 항거의 역사가 빅토리아 시대의 태내에 있었으며, 대니 보일이 연출한 개막식의 밑그림도 바로 모순과 역설의 시대정신이 아니었을까. ‘갓 세이브 더 퀸!’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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