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서도 “아직은 성적순이 대세”
무작정 진학’ 폐해 사회적공유 필요
고졸-대졸 차별제도부터 개선 시급
기업이 앞다퉈 고졸 채용을 확대하면서 ‘신(新) 고졸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25%가 2~3년 새 고졸 채용을 늘리고 있다. 중소기업(18%)보다 대기업(24%)이 더 많아 고무적이다. 대우조선해양처럼 일정기간 근무 후 대졸자와 같은 임금 테이블을 약속한 곳도 있어 ‘아무리 용을 써도 대졸자를 넘어서지 못한다’던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덕분에 대학을 안 가도 평균 이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부모도 자녀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라며 비관하기보다는 아이의 적성과 취미, 관심에 걸맞은 새로운 스펙과 스토리를 만들어줘야 할 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졸 학력만으로 우리사회에서 성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대학 진학률은 줄곧 80% 언저리다. 2008년 84%로 최고치 이후 꾸준히 70~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선진국에서 고졸 취업률이 될 만한 수치가 우리는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학력은 높아지는데 생산성이나 경쟁력은 제자리라는 점이 문제다.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60%를 채 넘지 않는다. 우리의 3분의 2 수준이다. 매년 일본보다 30%가량 더 고학력 인구를 배출하지만 생산성은 우리가 되레 더 떨어진다.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은 80, 한국은 40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학력 인플레가 국내총생산(GDP)의 1%의 상승 기회를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지성 연구전문위원은 “최대 42%에 이르는 대졸 과잉인력 때문에 2009년 이후 노동투입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 상태”라고 평가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대학 졸업장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와 다름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대졸=성공, 고졸=실패’라는 등식이 여전하다. 대학 갈 성적이 되는데 고졸 학력에 만족하라면 섭섭해할 부모나 학생도 많다.
정부가 선취업 후진학 정착을 위한 각종 고졸 채용 지원책을 시행하고 기업들도 고-대졸 취업자의 차별적 규제를 개선해 가는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고졸에 대한 선입견과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본인 자신과 부모, 우리 사회 모두가 풀어가야할 숙제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고2, 중3 형제를 자녀로 둔 김강현(가명) 씨는 “기업이 아무리 많은 고졸자를 뽑는다 해도 어차피 아직은 성적순이 대세”라며 “실제로 많은 기업이 채용 추천 공문을 보내면서 ‘성적 상위 5%’라는 전제를 다는 등 아직도 혁신적인 고졸 채용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와 다르게 선진국의 경우 ‘선취업ㆍ후진학’이 일반화해 있다. 고졸과 동시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한다. 자신의 적성은 이미 중ㆍ고교 때 생생한 현장교육과 방과후교육 등에서 모두 드러나 있다. 취미와 적성이 곧바로 직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청년층 취업자 중 고졸 이하 비중이 59.9%에 이른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ㆍ스위스 등도 높은 실업계 졸업률과 효율적인 학교 현장교육이 어우러져 기업 경쟁력을 배가시킨다. 스웨덴은 대학 신입생 가운데 20%가량이 30세를 넘는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10년 정도 일하던 직장인이 본인의 직업에 필요한 연구를 더하기 위해 대학을 찾는 것이다.
우리도 교육당국에서 선취업ㆍ후진학의 구체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관습이 제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 우리도 ‘무작정 진학’에서 이런 ‘선취업ㆍ후진학’의 취업-교육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고졸 취업자가 자신의 직업능력 개발을 위해 언제든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정부와 기업이 해주어야 한다. 이런 ‘시차 입학’이 5년이나 10년 후쯤 다른 모습의 대학 진학 풍속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려면 당장 고교와 대학 교육의 ‘현장형’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고졸 채용 확대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임금 차별 등 각종 제도적 규제의 개선과 혁신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분위기다. 그리고 부모의 의식 변화다.
여전히 부모는 ‘어떻게든 대학에 들여다놓으면 수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 아이만은…’하는 ‘내품에 자식’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 여전히 고졸 취업자가 70%가 부가가치 낮은 산업에서 단순노무나 서비스에 종사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이런 생각의 이면에 숨겨져 있다.
신 고졸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이런 환경이 서둘러 개선되지 않으면 고졸 확대 정책의 미래는 없다. 아이의 미래만 망가질 뿐이다.
<조진래 부국장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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