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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식의 세상속으로> 대선주자들의 약속과 위선 사이

‘정부개입론’·‘우리나라 대통령’…
공허한 비전경쟁 갈수록 심화
문제는 국정운영 방향성 확립
성숙된 새 정치패러다임 절실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대선주자의 출마선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좋은 말이 곧 좋은 국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정부의 ‘불편한 진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출사표에서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위한 ‘정부개입론’을 폈다. 일단 신자유주의와는 선을 긋는 전환이다. “복지수준과 조세부담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민권의 시대다. 국민대타협은 민주적 국정운영과 정치적 합의 도출 능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사전에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없다.

문재인 의원은 “공평과 정의를 근간으로 삼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나아가 ‘일자리 혁명’과 ‘강한 복지국가’를 말했다. 말은 가득한데,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왜 그 일을 제대로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 그러니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린다.

손학규 전 대표는 ‘실패한 진보’ 대신 ‘유능한 진보’를 선언했다. ‘저녁이 있는 삶’도 말했다. 그러나 그 ‘사회대타협’을 위해 진보로부터 무슨 양보를 이끌어낼지 말이 없다. 또 수조원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예산에 넣겠다고 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뿐, 비정규직 해소의 ‘유능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김두관 전 지사는 ‘평등국가’와 ‘서민대통령’을, 김문수 지사는 ‘선진강국’과 ‘섬기는 대통령’을 각각 내세웠다. 많은 대선주자의 비전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문제는 민주화와 양극화 시대에 어떤 국정운영의 틀을 세울 것인가다. 약속과 위선은 거기서 갈린다. 집권당이 되면 당정청 협의 구조가 가동된다. 5년 단임 대통령은 툭하면 역사의 평가 운운하며 밀어붙여 달란다. 정부와 국회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은 정부ㆍ여당 대 야당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몸싸움과 최루탄으로 변질된다.

뿐만 아니다. 정치인은 여당이 되면 주로 표 안되는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재정도 따져보고 우선순위도 가려야 한다. 그러나 야당이 되면 표와 정략이 앞선다. 책임질 일도 없다. 여야 간 입장이 바뀌면 말 바꾸는 것도 밥 먹듯이 한다.

여당 시절 급식을 지자체 사업으로 돌렸던 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무상급식하자며 국비를 내놓으라고 했다. 기초연금은 노인의 100% 다 주자고 주장하던 새누리당은 집권 후 70% 복지를 금과옥조처럼 말했다. 출총제, 비정규직, 반값등록금 등 롤러코스터를 탄 정책이 수두룩하다.

양극화 문제는 정략이나 대증요법으로 땜질처방을 해봐야 국정만 멍들 뿐 국민의 삶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100%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다가 시간만 끌면 국민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정권마다 약속이 위선으로 바뀌고, 환호가 심판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지금의 국정운영 틀이라면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을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술수라며 철저히 외면했다. 여당도 비판 일색이었다. 복기해보면 탄핵 직후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수를 넘겼다. 그러자 과거사, 국가보안법, 사학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을 밀어붙였다. 민생의 해결도 타협의 정치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다음해 4월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패하고 다시 여소야대가 되었다. 대통령은 8월 ‘대연정’을 공식 제안했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극한 대립의 상처도 너무 깊었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권력을 반이 아니라 통째로 내놓겠다”는 제안에는 노 전 대통령 나름의 치열한 고민도 담겨 있었다.

의원내각제가 아닌데 대연정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양극화 어젠다에 대해 ‘부분연정’을 하는 것은 필요하고 가능하다. 실컷 싸운 뒤가 아니라 정권 시작부터 연정의 정신에 의한 국정운영의 틀이 가동되어야 한다. 이것이 술수로 비친 ‘노무현 대연정론’의 진정한 응용이다.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해결, 적정부담 적정복지는 한 정권, 한 정당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솔직해질 때가 됐다. 부정한다면 위선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사람이 우선하는 국정’도, ‘국민통합의 정치’도 다 공염불이 될 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 집권당, 제1야당의 ‘양극화 완화를 위한 부분연정’이야말로 사회적 대타협 실현의 초석이 될 것이다.

그 부분연정의 구체적 방식은 대선주자의 정치적 상상력과 유연성의 몫이다. 해당 장관직을 나눌 수도 있고, 국회를 포함한 여야정위원회 방식도 있고, 대통령이 권한을 나누어주는 더 창조적인 방식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당과 국회는 싸우는 능력은 과잉이고 문제해결 능력은 부족하다. 대통령부터 권력을 양보하는 것이 여야의 불신을 내려놓는 지름길이다.

성숙된 민주정치를 통해 시장과 국민의 삶을 지혜롭고 찰지게 조율해내려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절박한 때다. 기성 정치권이 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하고 복고적인 정쟁으로 치닫는다면 여당은 정권을 뺏길지도 모르고, 야당은 선거대행업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헤럴드경제ㆍ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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