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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가시’ 문정희, ‘진짜’ 힐링배우를 말하다 (인터뷰)
“참 좋은 사람”

문정희를 마주했을 때 든 첫 느낌이다. 기자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다가오는 인간미 넘치는 배우. 그는 영화 ‘연가시’를 통해 김명민의 아내 경순 역으로 출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또 한 번 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솔직하면서도 진솔한 말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터뷰 내내 배려와 다정함이 묻어 있는 행동이 그를 더 빛나게 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박정우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평소 의리와 인연을 중시하는 그이기에 박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캐스팅 제안 전화를 받고 울 뻔했어요. 이렇게 세 번째 작품을 하는 데 감독님이 불러줬다는 것은 신뢰, 의리, 애정이 있었기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상이 김명민 선배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 더 기뻤죠.”

영화 속 그가 분한 경순 캐릭터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너무 착해서 탈이고, 남편의 타박에도 눈 하나 깜박 하지 않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이자 아이들밖에 모르는 모성애 지극한 엄마다.

“와이프고, 주부이기 때문에 매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연가시에 감염되서 없던 매력도 생기잖아요.(웃음) 작품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가시에 감염되고 죽어나가지만, 그 속에서 감염 경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경순이에요. 그 부분이 전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작품이 좋다 하더라도 전작 ‘천일의 약속’, ‘사랑을 믿어요’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유부녀 캐릭터를 벗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캐릭터보다도 작품이 우선인 천상 배우였다.

“저는 캐릭터보다 작품이 먼저예요. 당연히 저도 예쁜 역할을 하고 싶죠. 하지만 그게 저한테 우선 순위는 아니에요. 예쁜 외모만으로 대중들에게 어필을 하는 것은 결코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쟤는 예쁜데 연기 못해’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캐릭터가 얼마나 대중들에게 리얼하게 다가갈지 정당성을 찾는 게 배우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는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감우성의 첫사랑 역할로 청순하면서도 단아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그는 “그 당시 예쁜 역할을 원 없이 했다”며 “지금은 캐릭터에 편견을 갖지 않고 연기하기 때문에, 더 다양한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오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연가시에 감염 된 뒤 겪게 되는 고통과 그로 인해 오는 광기, 분노,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을 완벽히 표현했다. 그렇다면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화제에 오른 ‘생수통’ 신 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이 수용소에 갇히는 장면이었어요. 수용소 신은 극중 제 아이들과 뱃속에 연가시만 있는 거죠. 경순이의 감정이 중시되는 신인만큼 지문도 너무 길고, 외우기도 힘들었어요. 결코 쉽지 않았죠.”

이처럼 모든 장면마다 최선을 다해 임하는 이 여배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기 노하우를 소속사 신인 연기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어했다.

“사실 정답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긴장감을 이겨내야 하고 실제 상황이라고 느껴질만큼 집중력이 있어야 되거든요. 저는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따름이죠.”

지금이야 오랜 연기 생활로 배우로서 자신만의 신념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이지만,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의 지독한 싸움을 견뎌냈다.


“‘연애시대’를 마치고 한동안 작품이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정말 컴컴한, 빛도 안 보이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죠. 그렇지만 저는 스스로 안위도 해보고, 꼭 빛이 있을거라고 믿었어요. 누군가가 농담으로 던진 말 중에 ‘포기는 김장할 때만 포기지 이 세상에 포기는 없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죠. 아픈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견뎠어요.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 귀한 생각이지 뭐예요.”

‘외유내강’ 문정희가 꼭 그랬다. 부드러워 보였지만 속 알맹이는 가득 찬 사람. 그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거나 하소연하지 않았다.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반드시 길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친구들에게 굳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런 시련이 왔을 때는 가만히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확 달라지더라고요.”

결코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끝없는 인내와 노력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서게 했다. 문득 누구보다 아픔을 잘 아는 그이기에 타인의 감춰진 상처까지 보듬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그는 “‘하얀거탑’ 여자 버전을 한 번 연기해 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아직도 하고픈 게 너무 많은 이 ‘힐링배우’의 미래가 눈부신 빛으로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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