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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출마 ‘공간의 정치학’…튀는 곳에 메시지 있다
손학규, 민주화 성지 광화문광장
문재인은 서대문형무소 자리서
정세균, 시장서 민생애정 과시
정몽준·김문수는 국회 정론관

박근혜 10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젊음과의 소통…불통이미지 타파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화문광장, 여의도 국회, 서대문 독립공원, 안중근기념관, 과천과학관, 그리고 땅끝마을 해남까지 전국이 무대다. 18대 대선에 출마를 선언한 잠룡들의 톡톡 튀는 장소 선택에 30년 정치 노장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잠룡들이 튀는 장소를 선택하는 이유는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특정 대상에게 단번에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활자에서 비디오로 미디어 환경이 바뀜에 따라 3초 남짓한 찰나의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고뇌의 산물이다.

오는 10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고심 끝에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점찍은 것이 좋은 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이들이 친구들이나 애인과 함께 쇼핑하고 밥 먹고 영화 보는 이곳에서 박 전 위원장은 ‘젊음과 소통’을 온몸으로 말할 예정이다. 그의 약점으로 꼽히는 불통과 청년층의 반감을 남은 기간에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게다가 타임스퀘어는 인근 영등포재래시장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강남의 코엑스몰과는 다르다. 각계각층을 아우를 수 있는 곳인 셈이다.

박 전 위원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타임스퀘어는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든 연령대의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며 “출마 선언에 참여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번거로운 여의도 국회의사당, 현행법상 정치행사가 불가능한 한강시민공원, 지나치게 엄숙한 국립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는 구로디지털단지나 올림픽공원 등이 막판 후보지에서 탈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간을 활용한 출마 메시지 전달에는 민주통합당 잠룡들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주 중 한 명인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민생과 통합을 이야기한 손학규 상임고문,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동행을 강조한 문재인 상임고문은 그 장소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민주당 인사들에겐 성지(聖地)로 읽히곤 한다. 광화문을 놓고 손 고문과 문 고문이 신경전을 벌인 게 좋은 예다. 손 고문이 출마 장소로 먼저 광화문을 선점하자, 문 고문은 애초 계획을 바꿔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바꿨다. 광화문과 서울광장은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거행됐던 장소로, 그만큼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넓은 광장 대신 서울 중심가이자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 광장시장에서 출발한 정세균 전 대표에게서는 ‘서민과 민생’에 대한 애정을 읽기에 충분했다. 또 내리는 장맛비 속에서도 깔끔한 흰색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고 국립과천과학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자랑한 김영환 의원의 출마 선언식은 ‘젊음과 창조, 과학에 대한 열정’이라는 평소 소신과 신념이 잘 녹아들었다.

반면 장소보다는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국회 동산에서 ‘탈(脫)권위’와 ‘개헌’을 말한 이재오 의원은 의회정치를, 경기도청 대신 국회를 택한 김문수 경기지사는 중앙정치무대 재진입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같은 ‘공간의 정치’는 과거 대통령후보들도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그리고 정주영 회장이 나섰던 10여년 전만 해도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군중의 박수와 연호가 그치지 않았다”는 식의 신문기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름의 지지 기반은 있었지만, 절대강자는 없었던 3김 시대 정치에서 남다른 ‘세(勢) 과시’를 통해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광장이 출마와 세 과시를 위한 마당이었다면, ‘상도동’ ‘동교동’으로 표현되곤 했던 자택도 이들 시대에 흔히 사용됐던 정치 공간이다. 특히 정계 은퇴나 은퇴 번복, 불출마 선언 등 중요한 결심의 순간에 그들의 자택은 여의도광장 이상 가는 정치 공간의 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이런 ‘공간의 선택’은 비단 우리나라 정치판의 일만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7년 2월 자신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 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스프링필드 광장은 과거 일리노이 주 주정부청사가 있었던 장소로, 1858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지 못한다”는 선언으로 흑인 노예해방 정치투쟁을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이나 뉴욕이 아닌 이곳을 택한 이유도 이런 역사성에 주목한 결과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공간 선택도 등장했다. 바로 전 세계 모든 사람과 같은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인터넷이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2008년 대선 출마 사실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승리를 위해 뛰어들겠다. 대선출마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돌아온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공간 선택도 눈에 띈다. 2011년 9월에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모스크바 시내 루즈니키 경기장. 이곳은 러시아의 인기 스포츠이자, 푸틴 자신도 자주 즐기는 아이스하키 리그가 펼쳐지는 곳.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강한 러시아’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갈망을 자극했고, 결국 대통령 자리로 돌아왔다. 

<최정호ㆍ홍석희 기자>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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