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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의 품격’ 은 환상이고 … ‘네가지’ 는 현실이다
일요일밤 남편과 아내는 불화한다
화려한스펙 40대남성출연 ‘신품’
억대 외제차 타고 세련미 넘쳐

30대 루저 대변 개콘 ‘네가지’
키작고 뚱뚱하고 촌티 넘쳐

직업·출신따라 남성계급화
시청률은 환상이 현실 눌러



일요일 밤만 되면 38살의 결혼 5년차 직장인 김모 씨는 TV 앞자리가 불편하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자지러지는 아내가 곁에서 저녁 먹고 부른 배를 쓸어내리는 남편만 돌아보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다. 일순 아내의 표정에 스치는 싸늘한 기운은 김 씨 혼자만의 자괴감일까. 그때마다 김 씨의 눈은 슬며시 휴대폰의 DMB를 향한다. ‘개그콘서트’의 ‘네가지’는 김 씨의 이야기처럼 통쾌하다.

시청률을 앞서가던 ‘개콘’이 최근 ‘신사의 품격’에 역전당했다. ‘환상’이 ‘현실’을 눌렀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여성의 판타지가 남성의 리얼리즘을 앞섰다”며 “요새 일요일 밤 채널선택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부부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3040세대의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 달콤한 로망과 씁쓸한 현실이 주말 밤마다 교차하고 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과 개콘 ‘네가지’는 극과 극의 콘텐츠다. 공교롭게 3040세대 남자 4명을 주인공으로 한 동시간대 두 프로는 연령, 직업, 취향, 출신지역별로 남성을 절묘하게 ‘계급화’하고 있다.

‘신사의 품격’의 주인공 김도진(장동건), 임태산(김수로), 최윤(김민종), 이정록(이종혁)은 성공가도의 40대 초반 남자들이다. 직업은 건축사와 변호사, 카페 사장으로 1억~2억원의 고급 외제차를 굴린다. 지난해 국세청 조사 결과 건축사의 평균수입은 1억1200만원, 개인변호사는 4억2300만원이었다. 

반면 ‘네가지’의 김준현, 허경환, 양상국, 김기열은 30대 초반의 낙오자를 대표한다. 이들 개그맨은 코너에서도 실제 자신을 연기하지만 매주 모두 똑같은 검정색 정장에 빨간색 타이 차림이다. 결점은 눈에 띄어도 개성은 필요 없는 조직 속의 유니폼을 통해 이들은 평범한 회사원을 상징한다. ‘신사의 품격’에서 4명의 남자가 T.P.O.(시간, 장소, 상황)에 따른 명품 의상을 한 회에도 몇 번씩 갈아입고 나오지만 ‘네가지’의 그들은 단벌신사다.

‘네가지’의 주인공들은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촌스럽거나 인기가 없다. 이 중 최단신은 1m67, 최고중량 120㎏이다. ‘신사의 품격’에서 4명의 평균 신체 사이즈는 키 1m83, 몸무게 72㎏이며 군살 없는 탄탄한 몸과 세련된 취향, 발군의 유머감각을 소유한다.

‘네가지’의 양상국은 매번 지방 출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에 대해 불평한다. 

실제 ‘네가지’의 개그맨 대부분은 김해, 통영, 춘천 등 지방 출신이며 무대에서도 사투리나 비표준적인 억양, 발음(고뤠!)을 구사한다. 반면 ‘신사의 품격’의 주연배우들은 서울 및 경기도 출신으로 극중에서도 세련되고 교양 있는 표준어를 쓴다. 

이들의 상품성은 ‘결혼 시장’에서 판가름 난다. ‘신사의 품격’에서 남자들은 40대임에도 불구하고 미녀들이 줄을 선다. 유부남인데도 그렇다. 상대도 그냥 미녀가 아니라 돈 많은 미녀들이다. 반면 ‘네가지’의 남자들은 10살이나 젊지만, 연애 시장에서 KO펀치를 무수히 맞아 전의마저 상실하고 오기만 남은 이들이다. 그래서 ‘신사의 품격’의 모토가 “엔조이 더 라이프”라면 ‘네가지’는 “나는 억울하다”를 외친다. ‘신사의 품격’의 정서가 과시와 소비, 쾌락이라면 ‘네가지’는 분노, 좌절,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 신사의 품격’이 환상을 충족시키는 드라마라면 ‘네가지’는 이 시대 남성에게 보편적인 ‘상처’와 콤플렉스를 드러냄으로써 공감을 자아내고 위안하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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