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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의상, 몸…우주의 ‘균형’을 말하다
정구호의 무대연출·안성수의 안무·김주원의 발레…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창작발레 ‘포이즈’
사람들이 움직인다
오브제도 조명도 움직인다
세가지 색과 원형무대
관객이 인지할 수 없는 순간
막과 장이 전환되고
암전,
무질서와 혼돈속
균형의 장치가 곳곳에…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은
균형을 찾는 잠재적 도구다


무용수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곡선과 음악의 향연. 원과 선, 격렬하고 복잡한 몸짓과 무대의 단순함.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창작 발레 ‘포이즈(Poise)’는 발레단 창단 이래 최대의 역작이다.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홀에서 선보이는 ‘포이즈’는 국립발레단이 슬로건으로 내건 ‘50년의 꿈, 50년의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포이즈(Poise)’의 단어적 의미는 ‘균형’이다. 균형을 콘셉트로 국립발레단과 두 명의 예술가가 의기투합해 완벽한 균형을 표현하며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정구호 디자이너의 무대연출, 안무가 안성수의 안무, 국립발레단의 무용이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삼박자의 질서를 찾아가며 ‘포이즈’를 창조했다. ‘포이즈’의 아름다움의 완성은 그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전통을 지킬 국립발레단이 현대무용과 만났다는 점, 새로운 시도와 균형이 어디까지 이뤄질 것인지가 작품의 포인트다.

▶단순함의 미학, 정구호의 연출. 원과 선ㆍ세 가지 색으로만 표현한 미니멀리즘의 정수= ‘포이즈’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디자이너 정구호다. 그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의 제안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0여 차례 함께 작품을 해 온 50년 동갑내기 안무가 안성수와 콤비플레이를 선보이며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 단장은 “(정구호, 안성수)두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고 한다.

제일모직 전무, ‘KUHO’, ‘르베이지’의 패션 디자이너로, 영화 ‘정사’ ‘텔미썸딩’ ‘스캔들’ 등에선 아트디렉터로, ‘레이디 멕베스’, 현대무용 ‘수류’ 등 공연계에서도 역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어 한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그다. 이번 작품에선 의상뿐만 아니라 오브제, 음악 등 무대연출 전반을 도맡아 연출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정구호는 국립발레단의 50주년 기념작 ‘포이즈’에 대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재밌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런 작업이 즐겁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고전과 현대를 넘어서는 자신의 새로운 시도가 토양이 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하지만 하필 왜 균형일까. 정구호는 균형을 작품의 주제로 잡은 이유에 대해 “지구의 모든 것들이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 균형과 조화에 관심이 많다”며 “이번 공연에서도 서로 맞물려서 밸런스를 맞춰 살아가는 것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론칭한 브랜드 ‘헥사 바이 구호’의 ‘헥사’도 균형과 맞물리는 개념이다.

정구호는 작품을 통해 ‘혼란 속의 질서’를 보여 주고자 했다. 그는 “고요하고 정적인 것만이 평정이 아니라 복잡한 것 속에서도 평정을 찾을 수 있다”며 “사람들은 움직이고 무대는 돌고 오브제도 상하운동하고 조명도 움직이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정신없겠지만 그 와중에도 조화를 찾아 균형을 이루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와 전통의 균형도 중요하다. 현대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발레를 버린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발레의 무대 전환 등은 지키지만 발레 형식의 파괴도 시도한다. 정구호는 막과 장의 구분, 관객이 인지할 수 없는 순간의 막 전환, 암전 등 균형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숨겨놓았다.

‘포이즈’는 세 가지 색과 원형무대를 통해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 줄 예정이다. 색의 기본이 되는 무채색을 이용해 흰색의 하늘, 흑색의 땅을 표현했고 생동감과 사람을 의미하는 적색을 무대 전반에 사용했다. 오브제엔 흑색이 빠진다. 정구호는 “안정감을 주는 청색을 쓸까 고민했지만 무용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적색을 썼다”고 밝혔다.

회전하는 흰색의 원형 스테이지는 흑ㆍ백ㆍ적의 세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다. 정구호는 배우의 앞, 뒤, 옆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다면성을 연출하고자 원형무대를 회전시켰다. 그는 이번 작품이 “‘프리서클’이라는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향후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이라며 차기작을 슬쩍 비쳤다.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은 균형을 조절하는 잠재적 도구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복잡하고 화려한 제국주의적 느낌”, 바흐의 음악은 “교과서 같은 기본적인 규칙을 지닌 음악”이라며 음악을 통해 복잡성과 질서를 조절했다.

의상엔 제국주의적 요소를 담았다. 단순하게, 하지만 흔히 인식하는 남녀 구분은 없다. 물론 고전과의 조화를 위해서 지나친 파격은 절제했다. 


▶발레의 꽃, 안무와 무대, 음악의 조율사 안성수= 무대와 음악, 배우들의 동작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그의 몫이다. 안무가 안성수는 순간마다 어울리는 안무를 만들기 위해 무대 연출에 맞춰 배우들의 움직임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다.

현대무용가이지만 발레 안무를 맡았다. 동갑내기 정구호의 덕이다. 1993년 미국에서 활동하며 우연찮게 안무가 안은미와 함께 처음으로 정구호를 만났고 그게 인연이 돼 ‘시점’ ‘제안’ ‘선택’ ‘볼레로’와 같은 10여개의 작품들을 그와 함께 작업했다. ‘포이즈’도 지난해 9월 서울컬렉션에 정구호의 초청으로 잠깐 들렀다가 의기투합했다. 그는 “정구호가 패션쇼에서 로마노프 왕조시대를 콘셉트로 의상을 만들었는데 색깔이나 훈장, 장면들이 머리에 강하게 남았다. ‘포이즈’의 검은 의상을 사진촬영 때 보니 전율이 오더라”고 했다. 국립발레단과 정구호, 안성수 모두 반세기를 살았다. 둘은 너무나 호흡이 잘 맞아 사실 균형을 달리 맞출 필요도 없었다. ‘포이즈’의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의상이 그에게 영감을 줘서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만나면 꼭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이 힘든 이유는 균형이 안 맞아서다. 사회도 균형이 맞으면 나쁜 일도 안 생기고 자기 일을 잘하면 잘 돌아갈 텐데.”

안성수는 정구호의 이런 이야기를 ‘포이즈’의 안무를 통해 구현한다. 그는 “몸에 대한 관심과 미니멀적인 관심사도 같다”고 말한다.

안성수는 2막 첫 번째 장에서 ‘국민체조’라 부르는 안무를 짰다. 원래 4열 횡대로 24명이 열을 지어 하던 동작을 기술적인 문제로 5열의 정사각형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했다. 가운데 비는 한 자리는 정구호의 아이디어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할 변화와 네 변 대칭의 균형을 줬다. 2막1장은 정구호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발레 무용수와의 균형도 조율해야 한다. 발레와 현대무용이 함께 어우러지려면 균형을 유지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집시라고 부르는 4명의 조커를 투입했다. 처음엔 무용 보조자로 참여했지만 이젠 발레를 현대무용으로 이끄는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는 “무용수가 자신의 일을 잘하게 만들어 주면 그게 균형”이라고 말했다. 발레단의 김주원과 김지영을 젊은 세대와 쌍을 맞춘 것도 세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요즘 안성수는 하루 한 끼, 저녁식사만 한다. 연습실에 있는 시간을 라마단과 같은 시간으로 표현할 정도로 집중한다.

포이즈’의 3인이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아래부터 김주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안성수 안무가, 연출을 담당한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몸으로 빚어내는 아름다운 균형, 김주원의 ‘포이즈’= 무용수에게 균형은 주로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상하체의 균형, 좌우의 밸런스, 한 발로 꼿꼿이 서다가도 점프와 착지를 해내야 하는 그들은 균형된 몸짓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은 “예술과 일상의 균형, 음악과 움직임의 조화, 기능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며 “안성수 선생님의 작품은 음악과 예술성, 움직임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평가했다.

클래식적 기본, 현대무용을 소화하는 실력, 음악과 움직임, 집중력, 예술적 감정 표현 등 균형의 자리는 많다. 그는 “다양한 장면마다 세트와 조명, 의상이 아주 간단해 무용수가 정말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했다.

김주원은 제목에서부터 힘들 것을 예상했다. 특히 이야기가 있는 발레가 익숙한 그에게 추상적인 무용은 숙제와도 같았다.

김주원은 안성수의 안무를 교과서처럼 따랐다. 그는 “선생님의 철저한 안무스타일이 있고 그의 언어는 확실하기에 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나만의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김주원은 소통과 교감을 통해 충분히 의도를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발레단의 역사만큼 최고의 기대작이고 오랜 시간 준비한 결정체라고 소개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에게 ‘포이즈’는 15년 발레단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최근 프리선언을 했고 그는 앞으로 ‘게스트 프린시펄’로서 활동하게 된다. ‘포이즈’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마지막 무대다. 그는 이제 여러 작품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한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무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발레리나로서의 새로운 인생과 도전 욕구에 대한 균형의 접점을 그는 이런 선택을 통해 찾았다.

최태지 단장은 “국립발레단이 그동안 단막 작품들을 한데 엮어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창작 발레로 이 정도 규모, 분량의 그랜드발레 작품은 처음이다”고 밝혔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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