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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권력에 무기력한 나 그리고 이웃들…‘추적자’ 그래서 섬뜩하다
억울하게 딸 잃은 형사의 복수극
시청자들 “분노 유발 드라마”
서민의 좌절감 공감대 형성
정치·기업 뒷얘기 생생하게 그려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SBS 월화극 ‘추적자 THE CHASER’가 요즘 화제다. 비현실적인 막장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의 힘을 확 빼버리는 이 드라마는 보는 내내 불편하고 섬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문제여서 결코 외면할 수가 없다.

억울하게 딸을 잃은 한 형사의 눈물겨운 복수극인 이 드라마는 개인적으로 당하는 데서 느껴지는 분노와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공분, 이 두 단계가 합쳐져 극대화한다. 열불나서 못 보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평범한 아버지를 대변하는 강북서 형사 백홍석은 서민에게 감정이입이 가장 잘되는 캐릭터이자 그런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인 손현주가 맡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백홍석이 딸 수정을 교통사고로 잃은 것만으로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 딸을 가진 자들이 부와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고의로 죽였다면, 그래놓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추악한 폭로와 싸움만을 일삼는다면…. 여기서 2차적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부여해놓은 공권력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정은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재벌가 서회장의 딸 서지수(김성령)와 그녀의 내연남인 PK준(이용우)이 교통사고를 덮기 위해 고의로 죽인 것이다. 교통사고 후 회생 가능성이 있었지만, 가해자가 알려질 경우 대권 도전의 꿈을 날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지수의 남편인 강동윤 의원(김상중)이 의사인 윤창민(최준용)을 30억원으로 매수해 주사액으로 살인하도록 교사했다. 그런데 창민은 홍석의 가장 친한 친구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분노와 함께 허탈함이 밀려온다.

수정의 아빠는 공권력을 말단에서 수행하는 형사다. 그런 사람이 딸 죽음 하나 밝혀내지 못하는데 다른 서민은 오죽하겠는가. 힘과 돈이 없으면 그냥 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추적자’는 정치와 기업의 막후와 이면의 검은 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피말리는 대결을 벌이는 서회장(왼쪽)과 강동윤 의원.

수정아빠는 세상이, 사회가 수정의 죽음을 못 밝혀내면 자신이 직접 밝히겠다고 나섰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르는 이 복수극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손현주가 “나는 수정이 아빠니까”라고 말했을 때 이 땅의 많은 사람은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죽은 수정의 얼굴과 손발을 만지며 그런 마음을 전하는 손현주의 표정은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피해자이면서도 가만 있다가는 두 번 죽는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범인인 PK준의 재판에서 수정이 마약을 복용했다거나 나이 많은 아저씨를 만났다는 오명이 덧붙여졌다.

강동윤 의원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면수심이다.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간 김상중은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통해 형성된 정치시사적인 이미지의 연장선에서 정치나 기업의 막후나 이면 등 어두운 면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그가 막후 실력자인 장인이자 한오그룹 총수인 서회장(박근형)과 벌이는 싸움이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72세의 배우 박근형은 절대 화를 내는 법이 없이 평온하게 말하지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소름을 돋게 한다.

요즘 ‘추적자’는 서회장과 강동윤이 벌이는 암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적자’는 드라마라 해도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치나 기업의 막후와 이면의 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더욱 마음이 아픈 건 나쁜 일에 가담한 악인이 모두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백홍석이 가장 신뢰하는 형사 선배인 황반장(강신일)마저도 돈 10억원에 배신했다. 돈과 권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들…. 드라마의 내용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어 더욱 화난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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