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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치에 깨지고…“대법원은 아프다”
사법부가 흔들리고 있다. 올 초 ‘부러진 화살’, ‘도가니’ 등 영화의 흥행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가 싶더니,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재판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에서 여야가 대치하는 사이 대법관 후보자 인사처리가 늦어지면서 유례없는 대법관 대거 궐석 사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대법관 3분의 1 궐석 사태 오나=“헌정사상 유례없는 대법관 대거 궐석 상태”에 대한 우려는 국회에서 임명동의 절차가 난맥에 빠지면서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상임위원장 자리 배분과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놓고 대치하면서 제 19대 국회 개원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회 구성도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박일환ㆍ안대희ㆍ김능환ㆍ전수안 등 대법관 후보자 4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만큼 오는 7월4일까지는 임명동의안이 처리돼야 한다. 4인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여야는 3일 이내에 경과 보고서를 작성해 본회의에 제출해 인준동의 절차를 밟도록 인사청문회법은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여야가 인사청문 특별위원회라도 구성해 대법관 후보자 4인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밟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 또한 국정조사 등과 맞물려 있어 박일환ㆍ안대희ㆍ김능환ㆍ전수안 등 4인의 대법관이 퇴임하는 7월 10일 이전에 임명동의안이 처리될 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때문에 대법원은 당초 지난주부터 인사청문회 준비에 착수하려 했지만 아직까지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회의 인사처리가 늦어지면 조만간 국회에 공식 항의 입장을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이 오는 7월 10일까지 임명되지 못하면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려워지는 등 대법원의 기능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나라당의 거부로 헌법재판소는 1년째 공석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법원마저 대거 공백이 생긴다면 헌정초유의 사법부 위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한 남성이 망치로 대법원 현판의 글자 중 '원'자의 'ㅇ'을 깬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일어났다.

▶잇따르는 판결 불만 난동=권위주의 정권 시절 ‘힘없는 독립’이나마 사법부를 버티게 했던 국민의 신뢰마저 민주화 이후 흔들리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서 법원의 결정에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2011년 동아시아연구원이 전국의 성인남녀를 상대로 실시한 ‘파워조직 영향력-신뢰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신뢰도는 각각 4위와 6위를 차지했다. 국가 기관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지만,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체보다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에 사법부는 아플 수 밖에 없다. 이 순위는 사법부에 대해 국민이 품는 기대와 실망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개의 경우 판결에 대한 실망을 속으로만 삭이고 말지만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유명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역사 속의 사법부’는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분신자살한 사건, 항소기각 판결을 받은 항소인이 재판장에게 계란과 인분을 투척한 사건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일어난 사건 중 언론에 보도된 사안만 해도 벌써 여러 건에 이른다. 지난 1월 한 보수 학부모 단체는 곽노현 교육감 후보매수 사건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자택까지 찾아가 계란을 던지는 등의 시위를 했다. 당시는 영화 ‘도가니’, ‘부리진 화살’ 등이 인기를 끌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던 때였다. 2월에는 이혼재판을 앞둔 40대 여성이 “판사를 믿을 수 없다”며 목 맨 채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지난달에는 판결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대법원 표지석을 망치로 깨뜨리는가 하면, 정신병 전력의 한 남성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불을 질렀다. 지난 8일에는 서울고등법원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범민련 간부가 판사를 향해 ‘미국놈의 개야’라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린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조홍석 경북대 법학과 교수는 “권위주의 시절에 사법부가 진 원죄가 원인이라 생각한다”며 “때문에 국민들의 근본적인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일개 법관이 올바른 결정은 내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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