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적도의 남자’, 왜 몰입지수 1위인지 작가에게 물었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드라마를 평가하는 객관적 수치중 시청률 외에 프로그램 몰입도 지수라는 게 있다. 시청률 1위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지만 몰입도 지수 1위는 ‘적도의 남자’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최근 TV 프로그램의 실질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방송광고지표 PEI(Program Engagement Index) 6월 결과를 발표했는데, 1위는 147.1을 기록한 KBS ‘적도의 남자’가 차지한 것.

김인영 작가는 ‘적도의 남자’를 ‘더킹 투하츠’와 ‘옥탑방 왕세자’ 등 치열한 각축을 벌인 수목극속에서도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수훈갑이다.

김 작가는 ‘짝’ ‘진실’ ‘맛있는 청혼’ ‘결혼하고 싶은 여자’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메리대구 공방전’ 태양의 여자’ 등을 썼다. 현실적인 트렌디 드라마의 대가, 월메이드 통속극의 작가 등을 불리우는 그는 최근에는 인간 심리를 파헤치는 작품들을 선보여 호평받고 있다. 최근 김 작가를 서울 강북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드라마 몰입도 지수 1위한 소감은?

“엄청 위안을 받고 있다. 너무 힘들게 만들어서 시청률이 안나오면 외면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에게 시청률은 고통스럽다”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믿는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건 아니고,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본다. 자라면서 친구와 선생님 등을 통해 사회화를 거쳐 깨달음을 얻고 희생을 체득하는 것 같다.”

-트렌디물에서 인간 심리 해부로 관심이 바뀐 것인가?

“이걸 쓰면 되겠다는 건 없고 삶의 의식, 이런 쪽으로 가다보니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게됐다.”

-당신은 웰메이드 통속극 작가인가?

“내 입으로 웰메이드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그려보려고 하는데서 붙여주시는 것 같다. 평소 사람에 대해 분석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 꼬치꼬치 묻거나 간섭하고 캐묻는 것도 싫어하고 누가 나에게 그런걸 묻는 것도 싫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고 첫 작품인데.

“결혼전이나 후나 큰 변화는 없다. 일할 때는 서로 떨어진다.”

-작품에서 중시하는 점은?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의 힘이 중요하다. 또 드라마는 100% 작가의 예술이라 생각 안한다. 그동안 10개의 드라마를 쓰면서 연출과 배우도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다.”

-‘적도의 남자’ 집필 계기는?

“‘태양의 여자’에 이어 연작을 낼 생각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맹인의 흐릿한 눈에서 촛점이 돌아오고, 돌아오는 순간 깊은 슬픔과 함께 칼날과 같이 분노가 일어나는 이미지가 보였다. 여기에 이야기를 붙여 드라마로 쓰고싶었다.”

-그래도 ‘태양의 여자’와 연관을 짓는 사람이 있다

“비교당할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제목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좋은 게 안떠올랐다.‘~의 남자’ ‘~의 여자’는 제목이 짧아 쉽게 지었다. 이리도 저리도 갈 수 없고, 뜨거운 곳에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태양의 여자’의 남자 버전은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인가?

“악인을 그리고, 통쾌한 복수가 나온다. 나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악인과 통쾌한 복수극이라면 시청률이 높았을까.악인을 그리되, 악인 심리를 그려보자는 거다. 욕심을 가지고 한 순간 실수를 하고, 사리분별이 흐려져 실수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하는 악인 심리 말이다.”

-악인에게 애착을 가지는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없다. 하지만 뿌듯한 건 시각복지권에 낭독 봉사하려는 신청이 쇄도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드라마는 싫어하는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끼리 만나면 큰 힘, 긴장감이 생긴다.

“그런 걸 의도한다. 선우(엄태웅)와 장일(이준혁)이 복수심과 죄책감을 숨기면서 서로 쪼우는 과정은 쓰기 힘들었다.강렬한 음악과 편집으로 힘이 실린 거다. 이번 드라마는 복수극이 아닌 복수 코드가 들어간 멜로극이라 생각한다. 김용수 감독님은 이탈리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신 분이다. 등장인물 두 사람을 서로 마주보고 잘 찍지 않는 등 화면도 특이했다. 너무 잘 찍어 선우와 지원(이보영)간의 멜로가 싱겁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 이야기가 가끔 등장한다. 복수를 해도 아무 것도 안남는다는 의미인가?

“허무함을 빗대려고 했다. 소설에서는 고기와 사투를 벌이지만 가시만 남은 고기와 돌아온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 고기를 잡으려 나갔다로 시작되는 헤밍웨이 소설은 내가 매우 좋아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눈이 안보일 때의 엄태웅 연기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나도 복지관에서 재활훈련을 배웠다. 아득하고 슬픈 기억이 있다. 선우에게 쓸쓸한 기억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태웅에게 눈을 자주 돌리면 힘드니까 선글라스를 벗거나 쓰거나 하라고 했는데, 동공연기는 생각보다 잘해주었다. 눈이 제대로 돌아오는 신은 9시간 넘게 찍었다. 최수미를 맡은 임정은은 처음에는 자신없이 시작했는데 이를 극복해냈다. 이준혁은 스스로 장일에 꽂혀 보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표정이나 말투가 너무 장일 같았다.”

-장일 아버지인 용배(이원종) 집안의 불행은...

“이원종은 이기적이라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다. 가난한데 아들은 똑똑하고, 불쌍하고 애잔한 아버지를 그리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용배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진 회장의 거래를 거부해야 하지만,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배는 아들 장일에게 일류대에 가고 사법시험에 붙어 출세하라고만 가르친다. 장일은 양지에서 바르고 따뜻한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다.”

-시청자 반응에 영향받는가?

“크게 영향은 안받는다. 인터넷 체크는 안하지만 간접적으로 걸러서 전달 받는다. 시청자가 원하는 쪽으로 가지않아 아쉽다, 좀 더 통쾌하게 해달라는 요구의 글이 많았다고 하더라. 시청자의 분노를 반영해 지원이가 용서하라고 하는 말을 빼기도 했다.”

-19회 말미에서 방송이 중단되는 사고가 났다.

“쪽대본 이야기에 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썼던 10개의 미니시리즈중 한번도 쪽대본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미니시리즈를 쓰진 못했을 거다.”

이 대목에서 김 작가는 제작관계자가 아닌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온 기사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날의 방송사고는 쪽대본이 아닌, 후광고가 포함된 테이프가 주조정실에 늦게 도착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연장됐다면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은?

“‘적도의 남자’ 적정분량은 4부 더 연장된 24부다. 선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선우와 지원의 멜로, 미친 장일을 돌보는 장면(장일을 죽이지 않고)을 좀 더 보여줬을 것이다.”

-트렌디물에서 직업공간을 자세히 그리는 이유는?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캐릭터를 살아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취재를 열심히 해도 써먹는 부분은 빙상의 일각이다. 하지만 취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도 내가 집필하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적도의 남자’ 시청자에게 한마디 해달라

“정말 감사하다. 편하게 볼 수 없는 드라마임에도 봐줘서 고맙고, 감정 깊이 들어가서 써야하는 대사가 어려웠는데도 시청자의 열광적인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드라마 작가로서 변화된 점을 느끼나?

“갈수록 치열하고 경쟁자도 많이 생긴다. 미니시리즈가 가벼워 진다기보다는 다양해지고 있고, 전문가 이상의 수준에 이른 시청자도 많다. 과거에는 1년에 한 편씩 썼지만 이제 2년에 한 편 정도다. 이런 환경속에서 계속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색깔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색깔을 갖추는 게 아니고, 하다보니 색깔이 나온다. 또 이렇게 하면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가 아니다. 이걸 써야 시청률이 나올 거다로 접근해서는 답이 안나온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걸 한다.”

-후배 작가들에게 한마디.

“초조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일희일비하면 망치는 곳이다. 멀리 내다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드라마 작가로서 사는 것도 치열하고 어렵다.”

-차기작은?

“드라마 작가를 당하는 서러운 주인공으로 해 실랄하게 쓰고싶다. 아직 준비가 덜됐지만 엄청난 코미디, 스릴러, 전쟁통에 꽃핀 사랑도 쓰고싶다. 스폰서가 나오는 치정 멜로물도 쓰고싶다. 평소 취재하고 내가 살면서 깨닫게 돼 살이 붙은 순간 집필한다.”

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