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추악하지만 측은한…‘그놈’이 잠시 떠납니다”
화제속 종영 ‘적도의 남자’이장일 검사役 이준혁
시놉시스 보고 배역 싫었지만
차가운 매력에 빠져들어 연기
욕망에 찬 악역이지만 시청자 공감
강렬한 인상 남기고 이달중 군입대


숱한 화제를 낳은 KBS 2TV 드라마 ‘적도의 남자’는 여러 모로 고전적이다. 친부인 줄 모른 채 진노식 회장(김영철 분)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가는 주인공 김선우(엄태웅 분)에게선 오이디푸스가, 사랑했던 약혼녀이자 그의 자식을 낳은 은혜를 의심하는 진 회장에게선 세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오셀로가 겹쳐진다. 하지만 각 등장인물은 전혀 고전적이지 않다. 복잡하고 현대적이다. 선한 주인공조차 마성을 품고 있다. 악역 이장일(이준혁 분)은 악에서도 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를 연상케 한다. 투명한 피부, 섬세한 감정선, 불안한 정신의 소유자 이장일을 배우 이준혁(29)은 120% 소화하며,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악인으로 만들어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된 배우 이준혁을 최근 서울 영등포에서 만났다. 이런 평가에 “감사할 따름이죠”라고 말하는 그의 낯빛이 환해진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연기자가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글, 상대 배우와 호흡, 연출자의 눈이 좋아야하고요. 시청자의 수준, 편집 이런 게 다 잘 맞아떨어진 거 같아요. 이런 경험이 최초였어요.” 그는 종영소감을 조근조근 말했다.

그는 처음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장일의 배역이 “굉장히 싫었다”고 했다. 마음이 바뀐 건 대본 1, 2회를 받고 인물의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하고서부터다. 어린 장일이 어린 선우에게, ‘내가 너 공부 가르쳐 줄테니 너는 내 뒤를 봐주라’라고 말하는 장면과 최수미(임정은 분)가 부경화학 딸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무당 딸인 걸 알고 차가워졌을 때다.

“강한 목적의식이 있는 인물이란 걸 알았고, 매력을 느꼈어요. 장일은 사실 끔찍한 짓(단짝 친구인 선우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내리쳐 바다에 빠뜨린 일)을 했잖아요. 지금도 장일을 용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장일의 비극적 상황이 도마 위에 생선 같은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칼로 내쳐지고 죽임을 당할 것을 알지만 파닥파닥 뛰는 생명체로서의 측은지심을 일으킨다고 할까요? 사형수가 형틀에 매달리기 전 강한 생존본능을 보이는 걸 보면 슬프잖아요. 그런 걸로 공감대를 얻고 싶었어요.”

“장일은 욕망의 집약체이고 추악하죠. 그런 인물에게 동정심이 들었다는 건 시청자들이 자기 안의 욕망에 대해 공감했다는 얘기죠. 시청자들이 옛날보다 고급스럽고 솔직해진 거 같아요.” 이준혁은 응축된 내면 연기로, 악역을 아름답고 슬프게 소화해 내 시청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인물 분석은 감독과 작가의 별다른 지시 없이 이뤄졌다. “신기하게도 각자 생각대로 가다가 서로 맞아떨어졌어요. 저는 장일의 성격을 처음부터 차갑게 가져가고 싶었거든요. 5~6회에서 선우가 눈이 멀어 돌아왔을 때 장일이 차갑게 대하는 장면을 찍고선 감독님도 나와 같은 시선으로 봐주시는구나 했어요.”

장일이 살인미수를 저지른 뒤 수사 받는 상황을 거울을 보며 예행연습하는, 일명 ‘거울장면’은 애초 이준혁 몫이 아니었다. 꼭 연기해 보고 싶던 ‘거울장면’이 4회 분량에서 어린 장일인 임시완에게 넘어가자, 그의 부탁으로 한차례 더 등장했다.

그는 고층건물 옥상 난간에서 선우가 장일을 밀어뜨리는 장면을 가장 기억나는 장면으로 꼽았다. 엄태웅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몸의 3분의 2가 40층 높이 건물 난간 밖으로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 ‘그때 거기서 널 죽여버려야했는데…’가 원래 대사인데 그 앞에 ‘선우야’란 말을 넣었어요. ‘선우야, 니가 이렇게 악마처럼 될 줄 알았으면’이란 대사를 마음 속으로만 했어요. 선우 역시 추악한 모습으로 돌아온 게 친구로서 슬펐던 거 같아요. 무엇보다 진짜 죽을 거 같았어요. 그땐 몰랐는데 정말 위험한 거였더라구요.”

그는 평소 ‘리플리’ ‘하얀거탑’ 같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연기를 좋아했고, 자신만의 연기 분야를 확고히 세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 드라마 속 네 명의 인물을 카트에 넣으면 한 사람이 될 거 같아요. 장일의 욕망과 선우의 넓은 마음, 수미의 집착, 지원의 포용력은 한 사람을 찢어 놓고 극대화시킨 거 같아요.” 그의 인물 성격 분석은 명쾌하고 정확했다.

이준혁은 단국대 재학 시절 사설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며 단편영화를 찍는 등 처음엔 연출에 관심을 두다가,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연기에 눈을 떴다. 2008년 ‘조강지처클럽’으로 데뷔해 ‘수상한 삼형제’ ‘시티헌터’ 등에서도 검사 역을 맡았다.그는 이달 중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