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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막당일에 전시 전격취소한 서울시립미술관,왜?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이 5월30일부터 8월26일까지 열기로 했던 블록버스터 전시인 ‘기적의 미술관’전을 전격 취소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0일 “한국-브라질 이민 50주년 기념 특별전:기적의 미술관’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미술관측은 이 전시의 주관기획사인 (주)지엔티컬처의 사정으로 일정대로 전시를 개막할 수 없게 돼 ‘특별전을 전면 취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전시 개막당일에 전시를 전격취소한 것은 국내 미술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엔티컬처가 이번 ‘기적의 미술관’전의 공동주최사인 MBC의 파업 장기화로 전시 협약체결이 이뤄지지 않자 지난 23일 ‘일정대로 개막이 어렵다’고 통보해왔다”고 했다. 결국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불가 통보’를 받은 미술관측은 석달간의 공백기간을 대체할 소장품 전시를 서둘러 꾸린 후, ‘전시 취소’와 ‘대체전시 일정’을 언론에 공지했다.

‘기적의 미술관’전은 지난해 5월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Museu de Arte de São Paulo)의 네투 (Netto)관장이 서울시립미술관(당시 류희영 관장)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성사된 전시다. 한국의 브라질 이민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행사로, 유럽및 남미의 중요한 근현대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상파울루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을 들여와 전시를 열기로 합의한 것이다. 전시에는 반 고흐, 고갱, 세잔, 르느와르, 드가, 모네, 모딜리아니, 피카소, 샤갈 등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20세기 회화 등 100여점이 내걸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시주관사인 지엔티컬처는 "당초 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MBC가 파업 장기화로 협약 체결을 파기하면서, 투자를 약속했던 군소 투자사까지 속속 빠져나갔다. 막대한 진행경비, 항공운송료, 보험료 등의 조달이 어려워 결국 큰 차질이 생겼다"고 밝혔다. 반면 MBC측은 파업으로 계약 체결이 지연되긴 했으나, 애초부터 기획사측이 완성도있는 전시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주관사측은 일정을 연기해서라도 전시를 강행할 뜻을 밝혔으나, 미술관은 대관을 전면 취소하고 대체 전시인 ‘매핑 더 리얼리티스’의 막을 올렸다. ‘SeMA(서울시립미술관) 컬렉션으로 다시 보는 70-80년대 한국미술’을 부제로 1부에는 1970년대 모던아트인 모노크롬회화와 실험미술을, 2부에는 1980년대 민중미술을 본관 2,3층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2부 전시에는 지난 2000년 가나아트(회장 이호재)가 기증했던 200점의 민중미술 계열 작품이 공개된다.


결국 이번 ‘기적의 미술관’전이 불발로 그치면서 한국 정부와 시립미술관은 브라질 정부와 상파울루 미술관에 ‘얼굴’을 못들게 됐다. 국제미술전은 양국 미술관간, 정부간 신의로 이뤄지는 약속이다. 그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브라질의 대표적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걸작 미술품을 들여오는 전시를, 개막을 목전에 두고 갑작스레 취소한 것은 한국의 국제신뢰도를 실추시키는 뼈아픈 사건이다. 주최 측은 지난 16일 서울에서 에지문도 후지타 주한 브라질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상파울루미술관 소장품전을 알리는 기자회견까지 연바 있다. 또 지난 17일부터는 입장티켓 판매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썬 ‘장소만 빌려주는 대관 전시’였다고 하나 서울시립미술관의 좌표와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군소 개인 화랑도 아니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대표적 공공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이 국제미술전을 전시 개막당일에 취소하고, 이를 대체할 전시를 급조했다는 것은 사정이야 어찌됐든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서울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 이렇게 엉성하게 운영된다는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인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립미술관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최고의 노른자위 미술관이란 특성 때문에 여름과 겨울(초중고교의 방학시즌은 대형전시의 대목이다)이면 전시기획사들이 꾸민 블록버스터 전시에 수개월씩 공간을 대관해주곤 했다. 최고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샤갈’전을 비롯해 피카소, 르느와르 전시 등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이같은 외부기획전이 줄을 잇는 바람에 서울시립미술관은 자체 기획역량과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데 소홀히 한 측면이 많다. 더구나 외부기획사가 기획해온 전시에 ‘공동주최’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을 덧씌운 사례 또한 적지않다. 한마디로 손 안대고 코 푼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야 한국을 대표하는 시립미술관, 공공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올초 서울시립미술관장에 새로 취임한 김홍희 관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외부기획사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지양하고, 자체 전시기획 역량을 키우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다운 미술관, 서울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써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뼈아픈 자성과 혁신을 바탕으로 큐레이터및 미술관 전문스텝 육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술관은 미술관문화를 꽃피워야 할 문화기관이자 연구학술기관이지, 자리만 빌려주는 전시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블록버스터 전시라든가 문화이벤트, 아트페어 등을 집중적으로 열 도심의 대형 전시관 건립문제 또한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 왔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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