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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대신 지식강연 콘서트…콘텐츠 전파 생태계가 바뀐다
디지털 구술문화 시대
방대한 정보로 지친 사람들에…동영상 소통방식 세계적 인기
원하는 지식 능동적으로 선택…지식 수요자가 곧 공급자 역할

오프라인선 정서적 공감대 형성
육성 들으러 강연장 찾기도
고차원적 영감·지혜 추구



#장면 하나. “ ‘꿈에는 쉼표가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비슷한 연령대의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지식강연 ‘청춘페스티벌’에 참가한 직장인 1년차 조모(27ㆍ여) 씨의 말이다. 최일구 앵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이상봉 디자이너, 김태호 PD 등 각계 유명인들로부터 동기부여를 얻고자 모인 ‘청춘’은 모두 4000여명.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듣고 온 이들은 강연이 끝난 뒤엔 스마트폰으로 감상평을 올리기 바빴다.

#장면 둘. 같은 날 서울 종로에서 청소년교육 NGO인 밝은 청소년이 주관한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10대들의 아이디어-10분의 씨앗’ 오디션 현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중ㆍ고교생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는 10월 학교폭력에 관한 TED 개최에 앞서 TED 공식 라이선스 신청부터 행사 기획까지 전 과정을 준비하는 35명의 기획자를 뽑는 이 자리에는 150명이 자신의 의견을 10분 안에 발표했다.

#장면 셋. 지난 9일 오후 7시 서울 압구정동 인터넷실시간방송 ‘북TV365’ 현장에선 이색 풍경이 벌어졌다. 신간 서적의 저자를 지근 거리에서 만나기 위해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인근 직장인 50여명은 스마트폰, 아이패드를 들고 실시간으로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는가 하면, 일반인인 ‘무명’의 진행자와 저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먼 거리에서 올라온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하며 독자와 ‘소통’했다.

디지털 구술문화 시대의 첫 페이지가 열리고 있다. 교수, 전문가 등 주로 지식층이 자신의 메시지를 짧게 전달하는 지식강연 동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TED, UX캠프, 바캠프, 이그나이트, 마이크임팩트 등 지식강연 콘퍼런스를 주관하는 단체가 줄을 잇는다. 국내에서 2010년에 시작된 ‘청춘페스티벌’은 지금까지 5회 동안 10만명이 다녀갔다. 현장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수십명이 모이는 소규모 TED 행사 역시 18세기 프랑스 살롱 문화를 연상시킨다.

SNS를 통해 동영상을 접한 이들은 직접 화자(話者)의 육성을 듣기 위해 강연장으로 달려간다.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세대는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 또는 영감받고 싶은 메시지를 강연장이나 인터넷, 모바일 동영상에서 능동적으로 골라 찾는다.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가치 역시 동영상으로 알리고자 한다. 책, 신문 같은 ‘차가운’ 활자 매체나 TV 같은 일방적으로 ‘뜨거운’ 매체는 점차 멀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15세기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 인간 사고체계를 지배해 온 ‘텍스트’ 시대의 끄트머리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한글 문양 의상으로 유명한 이상봉 디자이너가‘ 청춘페스티벌’에 나와,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시절 진로를 두고 방황했던 일화를 털어놓고 있다. 이 디자이너뿐 아니라 김태호 PD 등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청춘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했다.

▶학교 밖 학교, 지식 수용자이자 전달자인 ‘나’=지식강연의 인기는 기존 학교 중심 교육체계가 지식수요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데서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예전엔 지식이 한 곳에서 다른 한 쪽으로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신문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수집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 아닌가. 그런데 지금 수용자는 정보를 수집하고 인터랙트(상호작용)하고, 퍼뜨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달라진 수요자의 지식 욕구를 학교는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젊은 층에 진로의 ‘길잡이’로서 학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정보와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친 외둥이에겐 길잡이로서 선생, 선배, 친구가 필요하다.

한동헌 마이크임팩트 대표는 “오프라인 강연장을 다녀간 사람들이 ‘교회 같다’는 얘길 한다. 즉 치유받고, 힘과 꿈을 얻고, 동기부여가 되는 자리다. 콘텐츠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본질에 대한 갈망도 같이 커진 것 같다. 젊은이들이 가볍고 자극적인 것보다 진정성 있고 고차원적인 영감, 지혜를 찾으려는 거 같다”고 진단했다.

주로 대학생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TED 영상이 빠르게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TED도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 TED-ED란 이름으로 전 세계 선생들로부터 ‘공유할 만한 가치있는 강연’을 주제로 3~10분짜리 비디오 영상을 받고 있으며, 현재 12개 정도인 TED-ED 영상물은 연말께 300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영상을 접한 새로운 지식 수요자는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비틀고 퍼뜨리면서 또 다른 이를 자극시킨다. 내 자신이 지식 수요자이자 전달자가 되는 셈이다.

▶메가트렌드? 일시적 유행?=이런 경향을 일시적 유행으로 볼 것이냐, 지식생태계를 뒤흔드는 메가트렌드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메가트렌드라고 하기엔 주류 교육, 미디어 시스템이 워낙 확고하고 아직은 다가올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준환 교수는 “웹2.0의 ‘오픈소스’ 운동과 비슷한 맥락이다. 즉 지식이란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되고, 개인의 독창성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회의 ‘인풋(inputㆍ입력)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런 지식은 공유되고, 빌드업(build-upㆍ창조)되어야 한다는 운동인데, IT를 넘어서 지식, 사고, 메시지 등에도 적용한 결과”라고 국한했다. 이 교수는 “지식동영상이 기존 미디어를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고, 기존 미디어 역시 달라지고 있지 않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며, 이건 그냥 ‘컬처’(문화)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소셜웹혁명’ 저자 김재연 씨는 “미국 월가(Wall街) 점령 사태를 보듯, 젊은 층은 제도나 기득권에 대한 불만을 갖고, 도전하려 든다. ‘디지털 마오이즘’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디지털마오이스트들은 지식 독점을 깨고, 공유하고 전체적인 시장을 키워가려 한다. 지식 권위를 몰락시키려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모바일문화가 발전할수록 지식을 직접 전달하는 형태가 많아질 것이다. 미래 콘텐츠는 다 이렇게(인터랙티브한 짧은 동영상)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영문학자 월터 옹은 그의 저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지난 수세기 동안 ‘쓰기’가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풀어놓았다. 그는 흑인의 랩, 판소리 같은 구술의 특징으로 감정이입적이고 참여적ㆍ첨가적이라고 했다. 이런 구술이 디지털세상을 만났을 때 인간의 사고 구조는 어떻게 또 달라질지 그 변화를 지켜볼 일이다.


<한지숙ㆍ문영규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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