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정태일 기자]“어? 왜 휴대전화 번호가 없죠?”
최근 애플코리아 직원들을 만나며 명함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다. 대표나 고위급 임원이 아닌 실무진들 명함에도 휴대전화 번호는 없다. 번호라곤 달랑 회사 대표번호 하나만 있다. 이에 상대방이 필요하다고 하면 애플코리아 직원들은 그제서야 펜으로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준다. 이에 불쾌함을 표시하는 상대방도 있기는 하지만, 곧 이유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신제품을 꽁꽁 숨겨두었다가 당일에 깜짝 발표를 하는 애플의 문화가 직원들 명함처럼 미세한 부분에도 나타나고 있다. 제품을 선보이기까지 털끝 하나 보여주지 않는 ‘신비주의’와 고집스럽게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는 ‘완벽주의’가 담겨있다.
애플코리아 명함에 원래부터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초부터 애플 본사 차원에서 명함 규격이 바뀌면서 명함이 지극히 단순해졌다.
하얀색 바탕을 반을 갈라 왼편에는 애플의 상징인 사과 모양 하나만 푸른 이미지로 새겨져 있다. 오른편에는 이름과 소속, 회사 주소, 대표번호, 이메일만 적혀 있다. 과거 있었던 직통 번호와 휴대전화 번호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팀 쿡 CEO부터 말단 사원까지 모두 똑같다. 또 애플의 쿠퍼티노 본사와 각 나라 로컬 법인들도 모두 같은 형태의 명함을 쓴다. 일반 기업의 경우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임직원들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가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애플이 명함을 단순하게 바꾼 것은 ‘여백의 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대외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명함만으로도 최고경영자부터 사원까지 모두 동등하고 통일됐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우리는 제품으로 말한다’는 애플만의 자신감도 담겨 있다. 애플코리아 관계자는 “이메일과 대표번호로도 충분히 대외적으로 소통할 수 있고, 고객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그 사람들이 만드는 제품으로 얼마만큼 만족과 편리를 제공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애플의 변화를 두고 신비주의 전략의 강도를 한 단계 올린 것으로 해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직통번호와 휴대전화 번호까지 단속하면서 신제품 공개까지 그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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