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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학개론'에서 ‘쌍년' 코드의 역할은?
-동유럽의 한류 현상에서 배울 점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한류 현상이 동유럽의 헝가리를 강타하고 있다. 헝가리 국영TV 채널 MTV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MTVA의 스토리 에디터인 베르떠 리비어 떼리지어(Bertha Livia) 씨가 촬영팀을 이끌고 1주일간 한국 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한국 전통과 현대 가치의 효과와 상호 유사성 및 차이점'이라는 주제의 52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헝가리 국영방송국에서 한국 문화를 취재해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헝가리에서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한국 음식 선호와 한국 영화 시사회, K-Pop에 대한 수요 증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타 씨는 MBC 드라마 ‘대장금(Jewel in the Palace)’이 헝가리 국영 MTV에서 2008년부터 4차례에 걸쳐 방송돼 헝가리 인구의 절반이 넘는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봤다고 전했다. 이에 힘입어 방송된 ‘선덕여왕’과 ‘동이’의 반응도 좋았다고 했다. 베타 씨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소재의 다양성과 전통적 소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전통적 소재를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는 전체 영화의 몇 %를 차지하는지 궁금하고, 전통적 소재의 모티브는 어디서 주로 얻는지도 궁금하다” 등 기자에게 한 질문도 구체적이었다. 특히 전통적 소재를 현재적 관점으로 어떻게 조화시키는지를 계속 물었다.

‘대장금’이 헝가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그들에게 낯선 한국의 전통음식 문화를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는 우리의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서구의 최첨단 요소까지도 건드릴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한국 궁중음식을 소재로 해 미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유럽인들도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베타 씨는 장금이가 나중에 의녀로 변신해 질병을 치료해나가는 미션은 역사적으로 페스트가 발생했던 동유럽인들도 질병에 어떻게 대처해나갈지를 궁금하게 여기면서 드라마를 계속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편의 드라마가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인의 감성을 움직이려면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적 관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는 고대, 중세, 근세를 다루는 사극이나 시대극, 1970~90년대 이야기를 담은 복고풍 드라마에 공히 적용되는 문제다.

‘대장금’과 ‘선덕여왕’의 인물들이 재주와 실력으로 경쟁하고 승부를 가리는 방식은 현재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헝가리인들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대장금’은 그런 방식으로 동아시아와 중동, 동유럽과 중남미까지도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건축학개론’이 멜로영화로서는 최대 관객 수를 경신한 것도 현재의 시점에서 첫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첫사랑 여성이 선배에게 자취방에 끌려가는 장면을 바보같이 쳐다보기만 했던 엄태웅. 그의 약혼녀가 한가인이 엄태웅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오빠 첫사랑 쌍년이었다며”라고 말한다. 이 ‘쌍년’이란 단어가 이 영화에서 지금 첫사랑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 됐다.

헝가리 한류 취재팀은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있어 얼마나 인간의 감성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이를 스토리에 녹여야 하는지를 또 한 번 깨닫게 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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